[김관선 목사의 시편] 장로고시에 떨어진 고당

입력 2013-10-15 18:27


산정현교회를 섬기면서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 그 흔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들 때문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고당 조만식 장로님입니다. 이것은 자부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큰 부담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 여기까지 온 교회를 더 성숙한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10월이 되면 조만식 장로님이 더욱 생각납니다. 고당께서는 1950년 10월 18일 북한 공산군에 의해 순국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해마다 그날 그분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곤 합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1922년 12월 31일 장로 장립을 받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장로로 피택된 오윤선은 앞서 6월 18일에 장립받았습니다. 왜 고당은 6개월이 늦었을까요? 놀랍게도 고당은 오윤선과 함께 1922년 6월 14일 장대현교회에서 개최된 제2회 평양노회에서 장로고시를 치렀는데 그 고시에 불합격했기 때문입니다. 조만식 장로님이 장로고시에 떨어지다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조만식 회고록에 나오는 오기영의 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은 장로교 장로이시다. 일찍이 장로로 추천되어 그 문답을 받을 때 요리문답에 낙제되어 다음번에야 장로가 되었다. 다음번에도 대답이 장로답지 못한 것을 말하자, 특등 취급으로 준무시험(準無試驗) 장로가 되었다. 물론 선생이 신앙이 부족한 까닭은 결코 아니다. 장로 문답에 낙제라는 것도 선생이 아니면 없을 일이다. 그는 장로를 원하지 않았던 듯싶다. 그에게 명예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는 순수한 신앙인으로 살기 원하셨습니다. 굳이 장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장로라는 귀한 직분을 벼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고당은 장로가 되어서도 겸손히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예배 때는 맨 앞자리에 앉았고 당회에서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발언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역시 같은 회상록 황성수의 증언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겸손함에 대한 또 다른 일화는 그의 오산학교 제자인 주기철 목사님을 모셔온 일이고 그분 앞에 늘 순종하며 교회생활하신 것을 통해서도 잘 나타납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도 두 분의 집사님이 노회 장로고시를 치르고 합격해 이제 절차를 거쳐 임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장로고시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고당의 장로고시 불합격이 더 생각났습니다. 고당을 그리며 그가 보여준 모범적인 섬김의 리더십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하고 겸손하며, 명예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님과 교회를 섬기고 민족을 짊어졌던 그분의 신앙과 인격이 많이 그리워집니다.

<산정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