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담은 추억을 기증합니다”… 147명 기증품 중 200여점 전시

입력 2013-10-14 18:58


1964년부터 1998년까지 34년간 철도공무원으로 일한 황인덕(74)씨. 6·25전쟁 와중인 1951년, 열세 살 이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구두닦이에 나섰다. 서울 소공동 일대에서 구두를 닦으며 동생 네 명과 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연명했다. 미군들이 구두를 닦고 건네는 요금이 1달러로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껌과 초콜릿을 주면 그것도 팔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는 군 입대를 하면서 쓰고 남은 돈을 땅에 묻었다. 그 사이 화폐개혁이 단행돼 구권은 무용지물이 될 판이었다. 군 상급자에게 부탁을 해 신권과 교환할 수 있었다. 그가 땅에 묻었던 액수는 자그마치 26만7100원이었다. 군에서 독학을 한 그는 1964년 기능직으로 철도청에 입사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구두통을 떠올렸다.

황씨는 어린 시절 생명줄이었던 이 구두통을 2011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선뜻 기증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런저런 사연이 깃든 기증품들을 모아 15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아름다운 공유’라는 타이틀로 특별전을 연다. 2010년부터 3년간 147명이 기증한 근·현대사 자료 1만2000여 점 가운데 선별한 200여점을 선보인다.

박물관 개관 이후 첫 기증전인 이 자리에서는 황씨를 비롯해 6명의 기증자들이 기증품과 함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영상 인터뷰를 들려준다. 가장 오래된 기증품은 송백진(80)씨가 기증한 고종의 ‘교지칙명’이다. 고종이 광무 6년(1902년) 7월 1일자로 송순하를 정3품 통정대부로 올린다는 내용을 적은 문서다. 송씨는 증조부가 받은 이 교지를 박물관에 기증했다.

최다 기증자는 ‘경부고속도로 기념탑 모형’ 등 761건 2522점을 기증한 고(故) 이한림씨다. 이씨는 1961년부터 1971년까지 건설부장관으로 복무할 당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후 관광공사 사장을 거쳐 주 터키대사와 호주대사를 지냈으며 2012년 작고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모은 각종 자료를 숨지기 직전 박물관에 내놓았다.

월남에 파병된 손수현(70)씨가 1969년 귀국하면서 가져온 개인소지품,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할 당시 한국인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사진, 신분증 등 112점을 기증했다. 또 새마을운동 교본, 상장과 통지표, 월급명세서,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관련 자료 등이 포함됐다. 옛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을 전하는 전시다. 무료 관람.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