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원금 갚기도 빠듯… 돈 쓸 여력이 없다

입력 2013-10-14 18:27


소비 주체인 가계가 좀처럼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가계 소비가 위축된 배경에는 부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급등하는 전셋값을 대기 위해 낸 빚의 원리금을 갚느라 쓸 돈이 부족해진 것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투자가 실종된 가운데 가계 소비마저 정체되면서 우리나라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4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인 1982∼1997년 경상 민간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14.9%로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세금과 이자비용 등을 뺀 소득) 증가율(15.7%)과 거의 비슷했다. 월급을 받아 세금을 내고, 대출 이자를 내더라도 매년 소득이 15% 정도 늘었고 그만큼 소비도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2003∼2012년 10년 동안 민간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5.3%로 크게 위축됐다. 처분가능소득 증가율(5.7%)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 빚이 늘고 이에 따른 원리금 상환부담이 소비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1999∼2002년 4년간은 외환위기로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이 연평균 5.6%까지 급락했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은 12.9%로 위기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며 “소득보다 많은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간 쌓아놓았던 저축을 처분하고 신용카드 사용, 은행 대출 등 빚을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2002년에는 가계의 순저축률이 0.4%까지 내려가 저축을 더는 줄일 수 없게 되자 2003년부터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됐다는 게 박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처럼 민간 소비가 부진해진 데다 투자 부진과 고용 부진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2003년 이후 경제 활력은 눈에 띄게 부진해졌다. 더 큰 문제는 가계 소비가 쉽게 늘기 힘든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가계 대출은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갈수록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말 현재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잔액은 927조원을 기록했다. 특히 신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서민들이 주로 찾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456조원으로 2007년 말(256조원)에 비해 무려 78.1%나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늘면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2007년 122%에서 2012년 136%로 증가했다.

일반은행 가계대출 연체율도 2007년 12월 0.6%에서 2013년 6월 0.8%로 늘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소득 1분위 가구의 채무 상환비율은 2009년 18.1%에서 지난 3월말 현재 29.3%로 크게 증가했다.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 중 빚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가는 돈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민간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돌파구는 동반성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계 소득이 갑자기 증가하기 어려운 만큼 일부 대기업에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시켜 중견·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임금을 골고루 상승시키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책적으로 가계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연구원 강종만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대출 시장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부실 위험이 높은 서민층 주거안정을 지원하는 서민지원 주택금융에 대한 관리체계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