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에 ‘생계형 대출’ 무섭게 는다

입력 2013-10-14 18:20


의류제조 공장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A씨(37)는 최근 저축은행의 문을 급히 두드렸다. A씨는 “아내가 갑자기 큰병에 걸려 입원했는데 여윳돈이 없어 급히 10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미 전세자금으로 은행에서 빌린 5000만원과 캐피털사에서 융통한 2000만원을 연체까지 한 상태다. 그는 자신의 신용상태를 고려해 시중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로 했다.

30대 후반의 이혼녀 L씨는 홀로 아이 2명을 키우고 있다. 외식도 삼가고 미용실에 간 지도 오래됐지만 월급 200만원으로는 최소한의 식비와 생활비 대기도 벅차다. L씨는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지만 또다시 한계에 부닥쳤다. 300만원 정도 대출받고 싶은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양육비 생활비 등을 자력으로 조달하지 못해 금융권에 손을 내미는 서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생활비 대출로 불리는 기타대출 증가율이 1년3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으며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을 8개월째 상회하고 있다.

14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 등 예금취급 기관의 기타대출 잔액은 지난 8월 262조378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250조8983억원)보다 11조5000억원가량(4.6%) 늘었다. 이는 지난해 5월(5.1%)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증가율뿐만 아니라 연체율 역시 7∼8월 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타대출이란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대출, 예적금담보대출 등 주택대출 이외 가계대출을 의미하며 통상 생활비 용도나 자금이 급히 필요할 때 쓰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즘 창구나 홈페이지 등을 보면 100만∼200만원의 소액을 대출하려는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며 “예전에는 주위에서 빌릴 수 있는 돈도 경기가 어려워져 모두가 힘들어짐에 따라 금융권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억제 대책이 주로 주택담보대출에 치우치면서 생활비 대출 증가율이 고공행진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 기타대출 증가율은 올 1∼8월 8개월 연속 평균 4.1%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율(2.5%)을 크게 웃돌았다. 2007년 12월 관련 통계가 나온 이래 최장 기록이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기타대출의 급증세는 전적으로 소득부진 탓이다. 한양대 하준경 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이 일자리 창출 등 가계소득 확충에 적극 나서고 저신용 서민들의 재기를 돕는 금융 대책 마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