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문서파기, 대사관 착오”… 황당해명·허위보고 논란

입력 2013-10-14 18:14 수정 2013-10-15 01:32

이명박정부 말기에 비밀 외교문서 수만건이 무더기로 파기됐다는 지적(국민일보 10월 14일자 1·3면 참조)과 관련해 외교부가 “일부 대사관이 잘못 보고했다”는 등 해명을 내놓으면서 외교부의 비밀문서 관리시스템 전반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민감한 문서를 직권 파기했다는 의혹이 여전하고, ‘단순한 실수’라는 해명은 황당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외교부의 비밀문서 직권 파기가 심각하다”며 “제대로 된 파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의혹이 짙다”고 질타했다. 윤 장관은 “올해 1월 2만여건이 파기된 것은 모 대사관에서 20여년간 파기 건수를 한꺼번에 보고한 것”이라며 “착오에 따른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 의원은 “해명을 하려면 파기된 문건의 목록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해명이 맞더라도 국익과 관련된 비밀 외교문서가 특정 대사관에서 한 달에 1만~2만건씩 무더기로 파기됐다는 보고가 올라갔음에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관리시스템의 심각한 문제를 의미한다. 외교부는 6개월에 한 번씩 국가정보원 비밀문서 관리시스템에 비밀문서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결국 국회뿐 아니라 국정원에도 허위로 보고했다는 얘기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비밀소유 현황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것은 유감”이라며 “앞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진실게임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윤 장관은 지난해 12월 1만1822건의 파기 문서에 대해 “직권 파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예고문에 따른 정상적인 파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권 파기가 되려면 비밀문서의 보호기간이 만료돼야 하고, 만료 전 파기 시에는 보안담당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어 윤 장관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관련 문서도 파기했느냐”는 질문에는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과 관련해 해당 대사관에서 파기해야 할 시점에 파기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 보안담당관 입회하에 파기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국감에 앞서 우 의원에게 제출한 질의 답변서에 “2012년부터 올 6월까지 예고문 시기를 앞당겨 문서를 파기한 사례가 없다”고 답했다. 윤 장관의 답변과 달리 보안담당관의 사전승인을 거쳐 직권 파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뜻이다.

또 우 의원이 “사본이어서 파기에 문제가 없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윤 장관이 “그렇다”고 답한 대목도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비밀문서는 사본 역시 보호기간 만료를 지켜야 하고, 사전 파기 시에는 사전승인을 거쳐야 한다.

엄기영 김아진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