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내리는 産銀예금… 갈지자 정책에 고객들 “어휴”
입력 2013-10-14 17:56 수정 2013-10-14 22:20
산업은행의 고금리 예·적금 상품인 ‘KDB다이렉트’에 몰렸던 돈이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 산은이 민영화를 대비해 일반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2011년 9월 의욕적으로 출시한 다이렉트 상품이 현 정부 들어 민영화 무산에 따라 퇴출 수순을 밟게 됐기 때문이다. 정권 입맛에 따라 산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애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
산은은 KDB다이렉트 예수금이 지난달 말 현재 8조8900억원이라고 14일 밝혔다. 지난 5월 말 9조8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4개월 새 9100억원이나 빠진 것이다.
예금 인출이 본격화된 것은 우선 다이렉트의 최대 장점인 고금리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이렉트는 시중은행에 비해 지점 수가 턱없이 적은 산은이 새롭게 고안해낸 모델로, 고객이 점포 방문 절차 없이 인터넷으로 가입하는 상품이다. 절감한 점포 운영비를 금리로 돌려주겠다며 출시 초기 금리를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경우 연 4.3%, 수시입출금식 예금은 연 3.5%로 책정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난 3월 감사원이 KDB다이렉트에 대해 “팔수록 손해 보는 역(逆)마진 상품”이라고 지적한 이후 금리가 2%대로 낮아졌다. 시중은행 상품과의 금리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원래 한 몸이었던 산은과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재통합이 확정됨에 따라 산은은 내년 7월 ‘통합 산은’ 출범 시점부터 다이렉트 신규고객 유치를 중단할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다이렉트로 대표되는 소매금융을 더 이상 추진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돈 떼일 걱정 없는 곳(국책은행)에서 제공하는 고금리 상품을 잃게 됐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지속성 있고 장기적인 영업 전략을 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소비자와 산은 양측이 다 피해를 입게 된 꼴”이라며 “소비자들은 한번 거래한 은행과 계속 거래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품이 일회성으로 끝나면서 소비자들을 철새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산은과의 통합에 반발하며 최근 사퇴한 진영욱 전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정책금융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저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예금도 필요한데 왜 소매금융을 축소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산은의 전체 원화 조달금액(68조600억원)에서 다이렉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달한다.
다이렉트의 성공에 긴장했던 시중은행들은 산은이 다이렉트를 접는 것에 대해 “오래가지 못할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좀 더 경쟁이 격화되면 다른 은행들이 다이렉트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 시점에선 역마진이 난다고 판단해 산은을 따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진투자증권 김인 애널리스트는 “산은이 고금리 상품을 내놓자 이로 인해 시중은행 금리가 올라간 적이 있다”며 산은의 정책금융기관 회귀로 시중은행에 유리한 경영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