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 성북구립미술관 ‘위대한 유산’ 전

입력 2013-10-14 17:42


조선왕조 마지막 내시인 이병직(1896∼1973)은 해강 김규진(1868∼1933)으로부터 서화(書畵)를 배웠다. 해강은 순종 때 황태자로 책봉된 영친왕 이은(1897∼1970)에게 서법(書法)을 가르친 서화가다. 대나무와 난초를 잘 그린 이병직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국전 추천작가를 지내기도 했다. 화가로 활동하면서도 일연의 ‘삼국유사’(국보 306호) 등 유물과 그림을 사 모았다.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나온 김찬영(1893∼1960)은 고희동(1886∼1965)과 김관호(1890∼1959)에 이어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우리나라 세 번째 서양화가다. 귀국 후 평양에서 미술단체 겸 연구소 ‘삭성회(朔聖會)’를 개설한 그는 국내 최초의 순수문예동인지 ‘창조(創造)’를 창간하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 조선학운동을 벌인 그는 고미술품 수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일본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는 데 앞장섰던 고미술품 수장가들의 소장품과 활동상을 돌아보는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 12월 8일까지 이어지는 ‘위대한 유산’ 전에는 당대 컬렉터 14명의 친필 작품과 소장품을 비롯해 관련 자료 50여점을 선보인다. 근대 문화예술 선구자들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기획전이 마련되기는 처음이다.

전시에는 독립운동가·언론인·미술이론가 등으로 활동한 오세창(1864∼1953), 조선총독부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된 함석태(1889∼?), 우리나라 최초의 전시기획자인 오봉빈(1893∼?), 초대 외무부장관·유엔총회 한국대표·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장택상(1893∼1969), 형무소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치료한 내과의사 박창훈(1897∼1951)의 컬렉션이 출품됐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국보급 문화재를 사들이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물을 모으기 위해 전 재산을 털었다. 평생 수집한 수 만점의 유물을 1938년 보화각(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세워 소장했다. 성모병원 초대원장을 지낸 박병래(1903∼1974)는 조선백자에 미쳐 700여점을 수집해 이 가운데 36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1900년대 초 고미술품 수집은 일본인들이 시작했다. 고려청자를 꺼내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는 금기인 고분까지 파헤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인의 사주를 받은 도굴·매매 업자가 수백 명에 달했다. 골동품 거래도 호황을 이뤘다. 이를 보다 못한 한국의 수집가들이 나섰던 것이다. 일본인으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가꾼 수장가들의 심미안을 되새겨보는 전시다.

간송이 보화각 상량식을 마치고 거실에서 이상범 박종화 고희동 오세창 등과 찍은 기념사진도 볼 수 있다. 오세창이 고려·조선의 서화법을 기록한 ‘근역서화휘(槿域書畵徽)’ 목록본도 나온다. 소장품의 유통 경로를 살펴볼 수 있는 경매 도록, 수장가들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미술품도 전시된다. 관람료 1000∼2000원(02-6925-501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