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모양만 보고 영어 벽 넘어, 4개국 수화도 능통… 국제농아인선교회 홍보대사 호주 박영주 집사
입력 2013-10-14 17:40 수정 2013-10-14 21:43
박영주(48·호주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집사)씨는 지그시 눈을 감고 감회에 젖었다. 청각장애인으로 냉대를 받으며 살아온 서러움을 떠올리는 듯 했다. 1급 청각장애인으로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즈주 토지국 공무원으로 30년째 일하면서 국제농아인선교회(DMI·총재 네빌 무어 목사) 국제홍보대사로 있는 그를 13일 서울 시흥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생후 5개월쯤 심한 열병을 앓아 청력을 잃었습니다. 여덟 살쯤 집 밖에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벙어리라고 놀려 무척 힘들었어요. 헌데 흑인 남편을 둔 옆집 아줌마가 친구가 돼 주었어요. 아줌마의 흑인 아이도 저처럼 놀림 받는 처지였지요.”
장애인과 흑인 차별, 동병상련의 슬픈 추억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호주 사회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불린다.
그는 한국어 영어는 물론 4개국 수화를 한다. 특히 ‘구화(口話)’ 실력이 뛰어나다. 정상인이 귀로 듣고도 해내기 어려운 영어의 벽을 순전히 눈으로 극복했다. 구화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일반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은 덕분이다. 중학교 2학년때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민간 그는 컴퓨터디자인 등의 교육을 받은 뒤 1982년 고등학교 재학 중 장애인특별 채용 시험을 통해 호주 공무원이 됐다.
호주 청각장애인 공무원회 회장을 지내면서 비장애인 직장 동료들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그에게 수화를 배운 동료 공무원 중 5명은 수화전문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 혹은 농아라는 이름의 행사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돕다 보니 점차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20여 년 전 멜버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농아아시안게임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뉴질랜드와 멜버른에서 열린 농아올림픽, 세계농아교육대회, 아시아태평양 농아교육대회, 시드니올림픽 등 굵직한 행사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현재 시드니주 장애네트워크 운영위원, 시드니 의회 한인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관광공사 한국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기도할 때마다 늘 갈 길을 준비해 주셨거든요. 직장에서는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제공해 주었고요. 좀 부족하지만 직무능력만 있으면 장애인이라고 차별받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장애는 불편이지 불행이 아닙니다.”
내년 10월 7∼11일 서울에서 열리는 DMI 국제콘퍼런스 홍보와 교회간증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해 수화 한 두 가지는 배웠으면 한다고 했다. 한국교과서에도 청각장애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편과 아들과 딸, 그의 가족 4명은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뉴사우스웨일즈대 의대 3학년인 아들 우람(20)이도 청각장애인이지만, 자신처럼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줄 의사가 될 꿈을 갖고 있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