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공기관 부채 500조, 대선功臣 앉힐 때인가

입력 2013-10-14 18:10

전문성과 능력 갖춘 기관장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공공기관장 인선을 할 것이라고 한다. 295개 정부 산하 공공기관 중 박근혜정부 들어 현재까지 기관장이 새로 취임한 공공기관은 69개다. 인선이 필요했던 100개 공공기관 중 24개 공공기관은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가 지났는데도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다. 지난 6월 관치인사 잡음이 불거지면서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선을 잠정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인사공백이 몇 달간 계속되면서 업무차질이 빚어지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늦춰진 것은 유감이다. 이제라도 기관장이 공석인 공공기관이나 정부 부처들이 새 수장을 맞아 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인사가 급하더라도 아무나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의 대선 공신 취업 청탁은 볼썽사납다. 새누리당은 이미 허태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대선 승리에 기여한 당내 수십명 인사 명단을 전달하고 공공기관장에 앉혀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요즘 새누리당 인사들의 언행은 더 노골적이다. 정우택 최고위원이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다 바친 동지를 위한 배려가 고려돼야 한다”고 하더니 유기준 최고위원도 “정부 주요 인사는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대선에서 힘을 합쳐 집권을 위해 함께 노력한 분으로 임명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아직도 공공기관장 자리를 대선 공신들에게 나눠주는 ‘떡고물’ 쯤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러니 역대 정권마다 논공행상식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되면서 공공기관들의 방만 경영을 부추기고 부채를 늘리는 것 아닌가. 조직장악력이 떨어지는 낙하산 기관장들은 노조를 달래기 위해 임금과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몇 년 뒤 수십억원 연봉을 챙겨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 사이 공공기관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295개 공공기관 부채는 493조4000억원에 달한다. 공공기관이 빚으로 연명하는데도 능력이 없다 보니 개혁이나 혁신은 엄두조차 못 낸다.

대선 공신이라도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나 능력이 있다면 굳이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관련성이 별로 없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대통령 측근이나 대선 공신이라는 이유로 ‘맡겨놓은 봇짐 챙기듯’ 공공기관장 자리를 꿰차는 악습은 이젠 끊어야 할 때다. 수십년간 공군 지휘관을 지냈거나 정부의 항공정책을 수행한 인사들을 제쳐놓고 3명의 후보 중 최하위 점수를 받은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앉힌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들을 내려보내는 것은 문제”라며 이명박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올해 3월엔 ‘국정철학 공유’라는 새로운 원칙을 추가했지만 원칙과 신뢰 이미지로 대권을 잡은 박 대통령이기에 국민들의 믿음은 컸다. 요즘 공공기관장 인선을 보면 차라리 말이나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