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종구] 독일 장인정신의 저력

입력 2013-10-14 18:10


당초 목적은 독일의 직업교육제도와 대외협력 실태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내심으로는 독일 기업의 경쟁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성과는 “mission accomplished(여러 측면에서 임무를 완수했다).” 뮌헨, 본, 프랑크푸르트 출장은 독일 총선과 맞물려 독일경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지, 독일식 가치, 체제, 국가경영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음미해본 시간이었다.

독일국제개발협력공사(GIZ) 방문은 세계를 선도하는 강대국으로서 독일의 글로벌 미션과 책임을 일깨워주었다. GIZ는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서비스 제공을 비전으로 설정해 개발도상국과 체제전환국에 대한 개발 노하우를 전수하고 실무자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종래의 유럽과 아프리카 중심에서 벗어나 중동, 아시아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제조업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미국에 대한 협력강화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BMW 공장과 박물관 견학.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점유율 1위로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뚝심 있게 내수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부동의 1위 수입업체로 우뚝 선 기업. 주문식 맞춤 생산, 화려한 컬러와 젊은층에 어필하는 도발적 디자인은 익숙한 성공 노하우. 과연 독일 차, 더 나아가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뛰어난 기술력과 함께 독일식 장인자본주의에서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3년 정도 소요되는 독일 기업의 직업교육은 이론과 실습의 이원적 교육 시스템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전문 기술인력을 배출한다.

이들은 독일 고유의 노사 공동경영제도에 따라 경영에도 참여하며 이는 협력적 노사관계의 뼈대가 된다. 중견기업 미텔슈탄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수출형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독일 제조업 성공의 주역이다.

중국의 실질임금 상승, 에너지 가격 하락 등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제조업체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필요한 기술인력이 부족해 애를 먹고 있는 미국 제조업의 실상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하르츠 입법과 어젠다 2010 개혁으로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 부담이 낮아진 것도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독일 산업의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제조업이 성장과 고용의 추동력이라는 독일의 강건한 믿음은 여기서 유래한다. 인구 65만명의 프랑크푸르트가 유럽의 교통, 교역의 허브가 되고 세계 최대 규모의 컨벤션 시티로 발전한 것은 교통의 이점을 도시경쟁력으로 승화시키고 집적경제의 효과를 극대화한 도시성장 전략의 성공신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총선 승리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검약, 인내, 규율로 정의되는 독일 국민성이 있었기에 독일식 장인주의가 빛을 발할 수 있었고 경제개혁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단기적인 포퓰리즘보다는 장기적인 솔루션을 중시하는 독일인의 지성, 9시30분이면 서점 체인 후겐두벨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 독일인의 지식 사랑, ‘흥청망청’을 혐오하는 재정 건전주의, 1·2차 세계대전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반성이 소박하지만 강건한 독일을 가능케 했다.

헨리 키신저 박사의 말처럼 독일은 유럽 속에서는 너무 큰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아시아의 독일’에 두어야 한다는 믿음을 재확인시켜준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었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