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문화백일장 시·산문 당선작
입력 2013-10-14 11:23
[쿠키 사회] “장애인문화백일장에서 시도한 ‘문학과거시험’에서 장원을 한 작품들이 너무 좋아 많은 분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요.”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은 14일 “올해로 5회를 맞이한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 문학 부문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방 회장은 “예술의 기본이 문학인만큼 ‘문학과거시험’을 통해 온 국민이 글을 즐겨 쓰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 창조경제요 문화융성의 첫걸음”이라며 “장원 작품이 ‘문학과거시험’의 역할과 가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운문부 장원은 문효종(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햇살’이다.
<햇살>
내가 햇살이라면
보드랍고 통통한 어린아이 손도 잡아주겠지만
거칠고 주름진 할머니 손도 꽉 잡아줄 거야
주름 사이사이 박힌 외로움 따스히 녹일거야
내가 햇살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꿈많은 이의 앞도 비추겠지만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어떤이의 길도 더 환하게 비춰줄 거야
덮은 담요 밑 텅빈 공간 온기로 채워줘야지
내가 햇살이라면
맑은 두눈으로 하늘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도 내리겠지만
초점 없는 검은 세상의 소녀에게도 쏟아져 내려야지
아이만의 세상 조금이라도 더 빛나도록
내가 햇살이라면
빌딩 숲속 분주히 움직이는 활기넘치는 거리도 보겠지만
좁은 골목골목 쪼그려 앉아있는 작은 길도 더 많이 보여줄 거야
힘없는 거리에 희망을 부어야지
어두운 곳에서 더 밝게 빛나는
우리 모두가 햇살이라면
산문부 장원은 전소연(한양여자대학교 실용미술학과)의 ‘나의 두 번째 남자’이다. 다음은 전문이다.
내게는 아빠가 두분 계신다. 나를 낳아 키워준 진짜 아빠와 한번도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마음으로 받아들인 아빠와 , 아빠가 두명이라는 사실은 사실 나만 아는 비밀이지만 오늘 여기서 고백을 하려한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이혼 가정이라 불렀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고 울었고 그러다 같이 잠을 자지 않았다.
나를 끔찍이 사랑하던 엄마가 짐가방을 싸던 날 나는 직감했다. 내가 외로워질 거란 사실을 말이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던 날 우리 가족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마트에 갔다. 이상하게도 엄마는 아빠에게 신발도 사주고 장도 봐주며 간혹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눈물을 보이며 돌아섰다. 그 순간 나는 어른들의 세계는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후 아빠의 외로움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나의 외로움이 더 커져갔다. 아빠와 난 그렇게 외로움으로 냉각된 시간을 보냈다.
내게는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아빠 말고도 한분의 아빠가 더 계시다는 사실을 대학생이 된 뒤에 알았다. 엄마의 재혼을 삼촌들의 말실수에서 깨달았다. 아빠와 나를 너무나도 외롭게 만든 이유가 엄마의 새로운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슴에 분노심이 들끊었다. 내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머리를 묶는 동안 엄마는 아빠가 아닌 남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빠 몰래 엄마의 남자를 만나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아픈지 듣고 나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 때 엄마를 만나러 갔는데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다소 몸집이 있는 꺼벙한 나를, 꺼칠한 얼굴과 푸실푸실한 머리를 하고 앉아있는 나를 예쁘다고 반겨주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의 내 모습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있다고 했다. 엄마를 데려다주며 바라보았다고 하며 어린 나에게서 엄마를 빼앗아 가 나를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그는 나를 마음속으로 내내 사랑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꺼라고 고백했다. 그가 내게 준 사랑은 내가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아니 느껴본 적이 없는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이었다.
그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도 아주 특이했다. 엄마가 외출을 하면 손으로 더듬어가며 엄마가 가장 오래 머무르는 부엌의 분위기를 바꾸어주기 위해 선반도 달아놓고 식탁의 위치를 바꾸어 엄마를 놀라게 해주며 새로운 기쁨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 라는 말을 자주 썼다. 내 이름을 부를 때도 우리 소연이라고 했고, 우리 식구 속에 나를 당연히 포함시켰다. 나는 그 우리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가 우리 아빠에게서 엄마를 뺏어간 사람이 아니라 엄마가 아빠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 있는 엄마의 구원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밉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어서 흐릿하게나마 나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그의 눈이 되어 잠시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차라리 술주정뱅이 아빠와 사는 것이 엄마가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기에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를 부르지도 않았다. 나의 침묵은 그에게 내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은 그에 대한 부정인지도 모른다.
이별의 순간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언제든지 우리 소연이가 원하면 엄마 돌려주겠노라고...
나를 배웅해주기 위해 길목까지 나오는 동안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에 걸릴 것 같은 돌멩이를 몰래 치워주었다. 엄마가 그에게 반찬을 밥그릇에 올려주었을 때 나는 조용히 맛있는 반찬을 그의 앞으로 당겨주었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그를 여러번 불렀었다.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엄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엄마와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엄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재혼 상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아빠나 삼촌들이 알면 엄마가 바보짓을 했다고 엄마가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쉽게 내뱉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부터 나의 두 번째 남자와 나도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의 존재가 나한테 위안이 된다. 뭔지 모르지만 그가 고맙다. 그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리라
-고맙습니다. 나의 두 번째 아빠-
한편 2013 장애인문화예술축제의 일환으로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주관으로 지난 9일 서울광장에서 치뤄진 장애인문화예술백일장 ‘문학과거시험’에 2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문학과거시험’은 한글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그때로 돌아가서 한글 사랑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한글 축제로 우리의 글 한글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편견을 해소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문학과거시험’ 시제를 만약 내가 너라면(易地思之)으로 내걸었다. 특히 비장애인 입장에서 장애인을 생각하며 쓴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운문부와 산문부로 나눠 장원, 우수상, 장려상, 입선에서 총 30명이 나와 680만원의 상금을 선물받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입상자 30명은 조선시대로 돌아가 도포와 갓을 쓰고 장원은 암행어사 복장을 하고 시상식을 하고 사물놀이 패의 장단에 맞춰 축하 퍼레이드를 해 한글날 휴일을 맞아 서울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천=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