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정부말 민감한 외교문서 수만 건 직권파기

입력 2013-10-13 21:29 수정 2013-10-14 00:57
박근혜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외교부(당시 외교통상부)가 주요 비밀 외교 문서를 무더기로 파기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또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체결 추진 논란이 불거진 직후에도 수만 건이 삭제됐다. 이들 문서는 사전승인 절차 없이 임의로 직권 파기된 의혹이 있어 제2의 ‘사초(史草) 증발 파문’이 일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외교부의 ‘보안문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교부는 이명박정부 말기인 지난해 12월 비밀문서 1만1822건을 파기했다. 올해 1월에도 2만4942건을 폐기했다. 매월 평균 수백 건에서 많아야 수천 건에 머물렀던 파기 건수가 정권교체 시기에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통상기능 이관에 관한 문서가 대거 삭제됐을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지만 부처 간 이첩(이관)이 아닌 파기를 했다면 더 큰 문제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8월에도 비밀문서 1만3202건이 대거 파기됐다. 이 시기는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직후여서 외교부가 ‘국가 간의 협상 등 기밀 유지’를 이유로 비밀문서를 직권 파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현재 외교부는 파기된 비밀문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해 1월부터 국가정보원 시스템에 의해 비밀문서를 관리하고 있다. 현행법상 외교부가 6개월마다 해당 관리 현황을 국정원에 송부토록 돼 있다. 집계 내역에는 비밀문서 생산 건수는 물론 파기, 이첩, 등급변경, 보호기간 만료 등으로 분류된 해제 건수가 포함된다. 이 중 파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외교부가 보호·보존 기간이 종료되지 않은 문서를 직권 파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파기 문서는 보관돼 있는 문건 원본의 복사본이 상당수”라며 “파기된 문서는 정상 파기이거나 집계 오류”라고 해명했다. 외교부는 또 “지난해 8월 파기 외교문서가 많은 것은 외교부 본부의 공관기록물관리점검팀이 당시 주러시아 대사관에 출장가 대사관이 임의로 보관 중인, 보호기간이 경과한 비밀문서에 대해 일체 점검을 실시하고 일괄 폐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가 절차를 어긴 채 비밀문서를 삭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내부 보안업무규정 시행세칙 제21조(비밀직권파기)에 따르면 비밀문서는 생산 당시 보호·보존 기간을 명시하도록 돼 있다. 기간을 채우지 않고 파기할 경우 보안담당관의 사전 결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 의원이 외교부에 ‘보안담당관 사전 결재에 의해 파기된 비밀문서가 있느냐’고 질의했으나 외교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우 의원은 “외교부가 비밀문서의 보호·보존기간 없이 임의로 파기하는 것은 국가의 공공기록물을 취급하는 원칙에 반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