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베를린에 문화 애호가·관광객이 많은 이유
입력 2013-10-13 19:13
고급 예술 저렴하게 만끽하는 ‘문화 관람 특구’
베를린이 ‘문화 관람 천국’이 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베를린의 오페라극장 ‘코미셰오퍼(Komische Oper)’. 공연은 성황을 이뤘다.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한여름밤의 꿈’.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수시로 터졌다.
“자주 오면 한 주에 한 번은 오페라를 봐요. 완전 문화중독자가 된 것 같습니다.”(어머니를 모시고 온 40대 남성 게르트 루카스 지오르처)
“이번이 세 번째 베를린 방문입니다. 열흘 일정인데 콘서트와 오페라 구경은 이게 벌써 다섯 번째예요.”(남편과 관람하는 캐나다 60대 여성 에디스 벌리)
두 관람객의 말은 문화 향유의 최고 도시 베를린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베를린에서는 시민들이 고급 예술로 평가받는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을 일상적으로 즐긴다. 외국인들은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서도 오페라를 보겠다며 찾아온다. 이는 미술관 박물관 등 시각예술을 즐기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낳았을까.
◇문화 관람 천국…배경은=풍부한 문화 인프라가 기본 바탕이다. 정부가 관장하는 예술기관으로 국립오페라(Staatsoper) 도이체오퍼 코미셰오퍼 등 오페라하우스만 3곳이나 된다. 프리드리히 슈타트팔라스트 등 뮤지컬 극장이 27개, 보데박물관 페라가몬미술관 등 박물관(미술관)도 28개나 된다. 이들 외에 사립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이 많다. 박물관은 200개가 넘을 것으로, 화랑은 470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베를린 영화제 등 크고 작은 문화 이벤트도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은 요소다.
윤종석 베를린 주재 한국문화원장은 “인구 1000만 도시 서울에 하나뿐인 오페라하우스가 340만명의 베를린에 3개나 된다는 건 그만큼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상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전폭적인 예산 지원은 오페라하우스 등 문화예술 단체나 개별 예술가들이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고 수준 높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뮤지컬의 경우 미국이 블록버스터 등 대작 위주인 것과 달리 독일의 문화는 전통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준 높은 프로그램은 예술의 도시 베를린의 명성을 키워 외국인 문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문화예술 기관들은 재정적 고민에서 자유로운 만큼 시민들에게도 저렴하게 고급 예술을 제공하는 문화복지 정책을 펼 토대를 만들어준다. 베를린에서는 18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의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다. 문화는 경제성이 낮아서 정부가 이런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 정부의 기본 정책 철학이다.
◇아벤트카세(Abendkasse)=서민들도 영화를 보러 가듯 부담 없이 오페라 등 고급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데는 ‘아벤트카세’라는 독일적인 문화 풍경도 자리한다. 저녁을 뜻하는 아벤트와 입장권 판매소를 의미하는 카세를 결합한 이 용어는 오페라나 콘서트가 시작되기 1시간 전 창구 판매(오후 3∼6시)에서 남은 표를 할인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베를린필 등의 공연장이나 오페라극장에는 해가 지면 주머니는 얇지만 문화가 고픈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난달 12일 밤 베를린필 공연장. 오후 6시 좀 넘어서 찾아간 아벤트카세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대학생이나 젊은이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사람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점잖게 차려입은 70대 노신사는 “아벤트카세를 이용한 덕분에 한 달에 6∼8회는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문화중독자라고 밝힌 지오르처씨도 어떻게 그렇게 자주 올수 있느냐고 묻자 “경제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70유로에 공연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아벤트카세를 이용해 10유로에 본다”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손영옥 문화생활부장 yosohn@kmib.co.kr
■ 자문해주신 분들
▲귄터 콜로트치에 베를린주 문화담당 대변인 ▲우베 노이매르커 유대인희생자기념재단 사무국장 ▲외르크 슈페르너 쾰른대성당 건축부문 복원 책임자 ▲볼프강 자이펜 베를린국립예술대학교 교수 ▲크리스티안 볼프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 목사 ▲볼프강 이멘하우젠 갤러리 무터 푸라제 대표 ▲박종화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말테 리노 한국 루터대학교 신학과 교수 ▲김재신 주독일대사 ▲윤종석 주독일 한국문화원장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맹완호 독일문화원 문화협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