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들이 장애학생에… ‘또다른 도가니’
입력 2013-10-13 17:47
#1.
지난달 초 고등학교 자퇴생인 K군(17)은 고교 재학생 A군과 함께 인근 여고에 다니는 장애학생 B양(18)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함께 술을 마셨다. K군과 A군은 B양에게 술을 권해 만취하게 만든 다음 번갈아 성폭행했다. 현재 K군 등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B양은 정신적 충격으로 전문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2.
지난 4월 한 중학교 교실 점심시간. C군 등 중학생 5명은 같은 반 친구인 장애학생 D군을 바닥에 강제로 눕혔다. C군 등은 반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항하는 D군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고는 성기를 만졌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D군은 아직도 전문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 파문(도가니 사건)으로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장애학생들은 여전히 성범죄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13일 공개한 ‘장애학생 인권보호 모니터링 점검결과’에 따르면 장애학생 인권침해 사례의 절반가량이 성범죄였다.
도가니 사건 후 지난해 3월부터 운영 중인 ‘장애학생 인권보호 모니터단’은 최근까지 초·중·고 1만2086개교를 방문해 인권침해 사례 130건을 적발했다. 이 중 성(性) 관련 인권침해는 60건(47.2%)으로 강간 등 성폭행 29건, 성추행 31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학교폭력 58건(44.6%), 가정폭력 12건(9.2%)보다 많은 수치다.
장애학생 인권침해는 중학교에서 가장 빈번했다. 피해 학생이 중학생인 경우는 60건(46.2%)으로 고교생 41건(31.5%), 초등학생 17건(13.1%)보다 많았다. 집계된 사례 중에는 장난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인권침해가 적지 않았다. 지난 5월 중학생 E군은 같은 반 장애학생에게 비비탄총을 발사하고 반항하자 멱살을 잡은 뒤 뺨을 때렸다. 비슷한 시기 중학생 F군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 남학생을 발로 차고 무릎으로 등을 찍어 넘어뜨린 다음 “아니꼬우면 일어나!”라며 폭언한 뒤 여자화장실에 밀어 넣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권교육과 함께 특수학급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장애학생들이 저항하거나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특수학급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2013 전국 초·중·고 특수학급 설치 현황’에 따르면 전국 사립학교 중 특수학급이 설치된 비율은 156개(17.5%)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26.7%, 중학교 19%, 고교 16%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줄어든다.
박 의원은 “일선 학교들은 우수학교 진학률을 중시하기 때문에 장애학생을 받기 꺼리고 오히려 장애학생의 전학을 유도하기도 한다”면서 “법에는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정받은 학교는 특수학급을 설치하여 장애학생의 교육권 실현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처벌규정이 없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