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인터넷게임중독과 ‘게이트 드럭’

입력 2013-10-13 17:41


최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규정한 데 이어 게임의 폭력성·선정성 등을 거듭 지적하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끈다. 황 대표는 지난 11일 한 모임에서 “인터넷 게임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대부분의 게임은 좋은데 아주 흉포한 것이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것도 있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황 대표는 지난 7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게임에서처럼 그냥 죽여보고 싶었다는 ‘묻지마 살인’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심지어 한 중학생이 컴퓨터 게임 하는 것을 나무란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임 중독의 비극”이라고까지 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인터넷 게임 중독자는 47만명, ‘예비 중독자’인 고위험군은 182만명에 달한다.

황 대표의 잇단 발언은 박근혜정부가 4대 중독 문제해결을 국정과제로 정해 추진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새누리당은 지난 4월 4대 중독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법안에 인터넷 게임이 포함된 데 대해 게임업계의 반발과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의 이기주의 및 칸막이 행정 등으로 논의 자체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업계는 법안 발의 후 “게임이 어떻게 흉악한 범죄인 마약과 같으냐”거나 “창조경제의 성장동력인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황 대표의 발언을 놓고도 “마녀사냥식 게임 규제를 중단하라”고 몰아붙였다. 게임업계나 문체부 등은 게임 중독이 과연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과 묶어 관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세계 정신의학계가 ‘행위 중독’을 ‘물질 중독’과 동일한 잣대로 진단·치료하고 있는 추세에서 이 같은 논리는 근거가 약하다. 게임이나 도박도 알코올, 마약처럼 ‘뇌보상회로’ 자극을 통해 기쁨이 유발되고 이를 통해 중독에 빠지는 병리 메커니즘을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국 진단통계편람 5판(DSM-5)이 행위 중독과 물질 중독을 ‘중독’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포함해 논의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다. 국내 학계는 인터넷 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또 하나, 게임업계 주장을 반박할 만한 연구 결과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알코올, 마약 등 다른 중독에 빠지는 ‘게이트 드럭(gate drug)’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대 의대 연구팀이 올해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수준에 따른 알코올과 흡연, 약물 이용률을 조사한 결과 일반 인터넷 이용자의 음주율이 20.8%인데 비해 인터넷 중독 잠재적 위험군은 23.1%, 고위험군은 27.4%로 높아졌다. 약물 이용률도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은 6.5%로 일반 사용자(1.7%)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아동·청소년기 인터넷 중독이 알코올이나 마약 등 물질 사용 위험을 높이고 어른이 돼서 다양한 중독에 빠지거나 공존할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즉 가벼운 중독이 향후 심각한 중독에 빠지게 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를 다른 중독과 전혀 동떨어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창조경제도 국민건강과 사회 안전이 위협받지 않아야 가능하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