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연극무대의 작은 신화는 계속된다
입력 2013-10-13 17:32
서울 대학로의 이 극단 저 극단에서 무대를 올리던 연출가 최용훈(50·국립극단 사무국장)은 1986년 자신의 극단을 만들었다. 극단 이름은 ‘작은신화’. 배우 김상중을 길러낸 연출가 김영수 대표가 운영하던 인기 극단 ‘신화’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1993년 연극 ‘Mr. 매킨도·씨!’로 3000만원을 벌었다. 당시 연극무대를 올려 번 돈으로는 큰 액수였다.
‘Mr. 매킨도·씨!’의 막을 내린 후 작은신화 단원들이 모였다. “수중에 들어온 이 큰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세일즈맨의 죽음’ ‘에쿠우스’ 등 번역극으로 넘실대던 대학로의 당시 풍경. 우리 연극으로 대학로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우리끼리 나눠 갖고 끝내지 말자. 연극으로 번 돈이니까 또 다른 연극을 만드는 데 사용하자.”
‘우리 연극 만들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1993년 11월 서울 원서동 북촌창우극장에서 공연한 조광화 극본의 ‘황구도’, 오은희 극본의 ‘두 사내’, 백민석 극본의 ‘꿈, 풍텐블로’ 등 세 편을 시작으로 2년에 한 번씩 창작극 2∼3편을 대학로 무대에 꼬박꼬박 올렸다. 창작극을 찾아보기 드문 시절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연극계에 작은 신화를 낳은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10일 대학로예술극장 내 카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최용훈은 “첫 작품 세팅 때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그걸 보고 우리는 서설(瑞雪)이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들이 ‘우리 연극 만들기’를 통해 관객을 만나며 지명도를 높였다”며 “작가와 배우, 연출가가 연극 동지로 연을 잇는 소중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제1회 우리 연극 만들기를 하며 극단은 종잣돈 3000만원은 물론이고 6000만원을 더 들였다. 그래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이 프로젝트는 실력 있는 극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고(故) 윤영선 작가 등 유명한 작가도 있었지만, 조광화 오은희 최치언 고선웅 김민정 등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연극계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올해 무대에 올려지는 우리 연극은 ‘창신동’(극본 박찬규·연출 김수희)과 ‘우연한 살인자’(극본 윤지영·연출 정승현)다. 20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신동’은 영세한 봉제가게가 빼곡한 창신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의 양육을 회피하는 친척들, 친언니처럼 따르던 이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책임지려는 여자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찬규 작가는 “창신동은 개인의 삶이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곳”이라며 “서울의 마지막 공간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지워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 올리는 ‘우연한 살인자’는 고향 주민 8명을 죽인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곧 수몰돼 사라질 고향에 찾아간 남자가 주민들을 왜 죽였는지, 그들을 둘러싼 과거의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추적한다. 인간이 진실 앞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두 편의 무대가 작은신화의 신화를 이어갈지 관심이다. 전석 2만원(02-889-356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