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초 영어 몰입교육 규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2013-10-13 17:20
교육 당국이 사립초등학교들의 영어 몰입교육에 칼을 빼들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최근 사립초의 영어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영어 몰입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제외시키기로 했으며, 이를 어기는 사립초의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영어 몰입교육은 수학이나 과학 등 영어 이외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초등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교육과정에 편성할 수 없고, 3∼4학년은 2단위(1단위는 주 1시간), 5∼6학년은 3단위 내에서 편성할 수 있다. 또 검인정 교과서 외의 외국 교과서를 사용해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불법이다.
정부는 사립초들의 영어 몰입교육이 불법일 뿐더러 부작용이 커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립초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금지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립초 영어교육 공립초의 4배…취학 전부터 영어 선행학습 내몰려=서울시교육청은 최근 교육부 지침에 따라 서울시내 사립초 총 40곳의 영어교육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35곳이 1∼2학년에게 정규 수업시간에 미국 교과서 등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초등학교 1∼2학년은 정규 교육과정에 영어를 편성할 수 없고, 모든 교과는 검인정 교과서만 사용해야 하는데 사립초들이 이를 어기고 있는 것이다. 3∼6학년도 영어 수업시간이 아닌 수학 과학 등 수업에서 영어 몰입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육부 방침이다.
앞서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이 학교정보 공시 사이트 ‘학교알리미’를 통해 서울시내 사립초 40개의 영어교육 시수를 분석한 결과 6년 합계가 1341시간으로 공립초(340시간)의 3.9배에 달했다. 특히 성북구 우촌초, 노원구 상명초·청원초·태강삼육초, 마포구 홍대부속초 등 영어교육이 많은 상위 5개 사립초는 공립초보다 7.3배 많은 2513시간을 가르쳤다. 사립초는 정규 교과과정에서 영어를 편성할 수 없는 1∼2학년에게도 연평균 215.7시간을 가르친 것이고 상위 5개교는 평균 432시간을 가르쳤다.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도 상당 시간 이뤄졌다. 사립초등학교의 평균은 주간 7시간, 연간 239.5시간으로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사립초에서 이뤄지는 영어 몰입교육은 그 자체의 과잉을 넘어 취학 전인 영유아 시기부터 사교육을 조장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게 사교육걱정의 지적이다. 대부분 1∼2학년부터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는 사립초에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이 일찌감치 영어 선행학습에 내몰린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 정책대안연구소 박민숙 연구원은 “지난 9월 전국 111개 초등학교 1학년생 학부모 54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영유아 교과 사교육 설문조사’ 결과 사립초 재학생들의 취학 전 영어 사교육 비율(81.8%)이 국·공립초(65.6%)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며 “원칙적으로 영어를 편성할 수 없는 1∼2학년부터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는 사립초가 많아 영어 사교육 연령이 자연스레 낮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40개 학교 중 32개 학교에서는 영어 교과에서 미국(영국) 교과서를 주교재 혹은 부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외 기타 교과에서까지 미국(영국) 교과서를 사용하는 사립초도 9곳이나 됐다(표3 참고). 초·중등교육법 29조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 장관이 검정,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해야 한다.
사교육걱정은 사립초가 영어교육시수를 늘리기 위해 영어 몰입교육을 창의적 특색활동으로 편성하는 등 편법을 쓴 것으로 추정했다. 또 대부분 사립초가 입학설명회에서 학교 특색활동으로 영어 말하기 대회, 교내외 영어캠프, 교환학생 제도 등을 통한 영어교육을 내세워 공립초와의 격차를 벌리고 학교 영어 교육과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와서 왜” “정권 바뀌니 정책 달라져” 사립초 학부모들 반발 거세=그러나 사립초 학부모들은 정부가 그간 영어 몰입교육을 관행적으로 묵인해 오다가 이제 와서 ‘탈법’을 운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사립초의 한 학부모는 “순전히 영어교육 때문에 비싼 등록금을 부담해 가며 학교에 보냈다”며 “학교에서 이를 못 가르치게 하면 학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항변했다.
영어 몰입교육으로 유명한 영훈·매원·우촌초 학부모들은 지난 8일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에 해당 방침을 철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학부모 1만3820명의 서명이 담겼다. 학부모들은 “저희 아이들은 공정한 추첨에 의해 적법하고 합법적으로 학교에 입학했다”며 “6년간 사립초의 몰입교육과정을 받기로 하고 비싼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불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학부모들은 “지난 정권에서는 영어를 강조하고 글로벌화를 강조했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사립초의 영어교육마저 철폐한다니 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뀐다면 누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자신을 사립초 1학년 학부모라고 밝힌 한 직장여성은 지난 7일 청와대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려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전부터 영어교육을 받는 것은 ‘사립초 영어’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외고·과고 진학 혹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외국어 능력을 고양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국제학교는 한국어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도 외국학교에 진학할 때 유리하다는 이유로 환영받는다”며 “사립초가 왜 한국어 교육과 영어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가혹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교육과정은 하나의 약속”이라며 “정부는 일방적 규제를 말하기 전에 사립초의 과잉 영어교육의 책임소재가 정부인지, 교육청인지, 해당 학교인지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