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면 전시공간 따라 펼쳐지는 짙푸른 ‘추상의 힘’

입력 2013-10-13 17:09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첫 대규모 초대전 ‘정직성展’

‘미메시스(Mimesis)’. 그리스어로 춤·몸짓·얼굴 표정 등으로 인간·신·사물 등을 모방하는 것을 뜻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자연의 재현’이라고 했다. 모든 예술적 창조는 미메시스의 형태라는 것이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파주출판도시에 들어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자연광을 그대로 살린 미술관으로 책과 그림이 공존하는 전시공간이다.

출판사 열린책들(대표 홍지웅)이 최근 건립한 이 뮤지엄은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했다. 2002년과 201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시자는 다양한 크기의 여러 전시장을 하나의 덩어리에 담았다. 곡면으로 이뤄진 백색의 전시공간은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그림과 함께 빛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정직성(37) 작가의 개인전이 11월 17일까지 열린다. 미메시스에서 그동안 기획전 등이 몇 차례 열리기는 했으나 전시장 성격과 규모에 잘 어울리는 작가의 초대전은 처음이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온 작가는 월세 작업실을 전전하며 주변의 연립주택 등을 화폭에 옮겨왔다. 서울 망우동에서 태어난 그는 둔촌동 신림동 망원동 봉천동 연희동 홍제동 등으로 이사를 다녔다.

“계속되는 이사에 따른 피로감 때문에 내 삶이 개구리밥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는 작가는 이런 경험을 작품에 담아냈다. 망원동의 빨간 벽돌 연립주택과 주변 건물의 골조나 공장지대의 풍경을 거친 붓질로 그려냈다. 삭막한 환경이지만 색채가 칙칙하지는 않다. 평소 생각과 상태를 붉고 푸른 색채로 감성적으로 붓질함으로써 ‘회화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만약 어떤 미술상 수상으로 상금 1억원을 받는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서울 시내의 단독주택을 구입해서 나의 동선에 잘 맞는 작업실로 개조해 사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오로지 작업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열정으로 김종영미술관의 ‘2012 오늘의 작가’로 선정됐고, 여러 갤러리에서 러브 콜을 잇달아 받는 유망 작가로 우뚝 섰다.

1·2·3층 전시장에 연립주택 그림과 추상회화, 스케치 등 크고 작은 작품 8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변해가며, 자주 이사를 다녀야만 하는 제한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공간을 가꾸어 나가는 건강한 유연함을 화면에 담아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빙 돌아가며 숨은그림찾기 하듯 보여주는 곡선의 전시공간과 잘 어우러진다.

미술관 1층에는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서적들을 할인 판매하는 북 코너가 놓여 있고, 그 뒤 벽면에는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책도 싸게 구입하고 그림 감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열린 미술관을 지향하다보니 카페에서 관람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주고받는 얘기가 전시장까지 들려 신경 쓰이게 한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노는 것도 그림 감상에 방해가 된다. 관람료 5000원(031-955-4100).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