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NGO 대표에게 듣는다] ③ 기아대책 정정섭 회장

입력 2013-10-13 19:22


“굶주림 없는 세상 향한 하나님 역사하심 실감”

기아대책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국제구호단체다. 지구촌의 기아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며 굶주린 이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한다. 기아봉사단을 보내 각종 구호활동을 펼칠 뿐 아니라 결손가정, 독거노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과 대북지원 사업도 한다.

1971년 설립된 기아대책은 8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국을 돕는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기아대책의 출발부터 함께 해 온 정정섭(72) 회장을 지난 1일 서울 염창동 기아대책 염창회관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기아대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들어봤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기아대책

정 회장은 기아대책을 설립할 때만 해도 생소했던 ‘해외원조 NGO’라는 개념을 정부 담당자에게 이해시키느라 진땀을 뺐다면서 얘기부터 꺼냈다.

“이전에는 외국을 돕는 단체가 거의 없었으니까 정부에 기관 등록을 하기까지 7개월 이상 걸렸습니다. 기독교운동이니까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종교담당관에게 갔다가 구제 성격이 강하니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로 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외국 사람을 돕는 일이니 외무부(현 외교부)로 갔다가 다시 식량문제니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로 가라고 하더군요.”

당시 정 회장은 총무처 장관에게 어디에 등록해야 할지를 질의했다. ‘단체 성격상 보건사회부 업무 소관’이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첨부해 보건사회부에 등록할 수 있었다. 사단법인으로 정부에 등록을 마쳤지만 곧바로 해외원조 사업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정부에서 사업의 절반 이상을 국내 사업으로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정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회의를 한 끝에 기아대책은 그나마 단체의 설립 취지에 맞는 국내 결식아동 돕기 사업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설립 초기에 후원금을 모으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서울시내 교회 3000곳에 후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200여곳에서 답신을 받았다.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데 뜻을 함께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늘어가면서 기아대책은 조금씩 성장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 외에 다른 성장 비결은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지금까지 모든 사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후원회원 43만5207명, 자원봉사자 5만6900명, 기아봉사단 582명 등이 기아대책의 사역을 돕는다.

“기아대책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일을 제일 가까이에서 목격한 증인이 바로 저이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다면 기아대책 사업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어떤 NGO가 전 세계 83개국에 580여명의 일꾼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역을 기뻐하시며 축복하고 계십니다.”

정 회장은 2005년 기아대책 회장에 올랐다. 그는 앞으로 기아대책의 사역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해외 한인교회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기아대책운동만 갖고는 부족하고 미국의 50개 주에 있는 4000여개 한인교회들이 사역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미국의 인력과 물질을 끌어낸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30년까지 전 세계의 척박한 땅에 10만명의 선교사를 보내고 100만명의 후원자를 모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또 국내 곳곳의 교회들이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는 문화복지센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회 문 열기운동’도 중요한 사역 중 하나다. 정 회장은 “기아대책은 국내에 크고 작은 사회복지시설 260여개를 운영하는데 이 시설들과 지역 교회들이 함께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부자’를 위한 일을 하다 굶주린 사람을 섬기다

정 회장 스스로 국제구호사업에 헌신하겠다는 비전을 세우지는 않았다.

충남 논산의 시골마을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의 꿈은 대학교수였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으니까 계속 공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그는 66년부터 23년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근무했다. 정 회장은 89년 전경련 전무로 퇴직한 뒤 일본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한 뒤 믿음이 깊어졌고 해외선교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아내가 일본 단기선교를 다녀온 뒤 부부가 함께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윤남중 새순교회 목사가 그에게 국제기아대책기구를 만들어보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를 계기로 기아대책 초대 회장인 한국유리 고(故) 최태섭 회장 등과 함께 기아대책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 회장은 “저의 멘토인 윤 목사님께 상의를 드렸는데 ‘당신이 거기에 가면 한 사람 몫밖에 못하지 않느냐’며 많은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24년 동안 이어졌다. 보람찬 시간이었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제 영욕을 함께 해 온 기아대책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후임자를 찾고 있다. 정 회장은 은퇴한 뒤에도 “일본이든 어디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암송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