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입력 2013-10-13 17:25
사도행전 21장 1~14절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자원하여 바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심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고, 예수님은 바로 그 뜻을 위해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예수님의 생애와 그분의 말씀을 쫓아간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두로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의 앞길에 환란이 있음을 알고 그 길을 만류하였고(4절), 바울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빌립 집사의 집에 머물 때에는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이 당할 고난을 극적(dramatic)으로 예언했습니다(11절).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지 말 것을 모두가 눈물로 권하기 시작했습니다(12∼13절).
그러나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음”을 선언했습니다(13절). 바울은 자신의 앞에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자신도 따라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던 두로의 제자들(4절)과 아가보 선지자(11절)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혹은 성령의 말씀을 따라 그런 권면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 역시 “성령의 매임을 받아(행 20:22)”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언뜻 성령님의 메시지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은 성령께서 무엇인가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이고, 성령의 증거는 결박과 고난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는 어디에서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고난이 있을 테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두로의 제자들과 아가보 선지자의 말을 들은 바울의 일행들(21절)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바울의 예루살렘 길을 막고 나섰습니다(13절). 그들의 이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많은 순간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또는 인간의 생각을 앞세워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두로의 제자들이나 바울과 함께 가던 무리들이 성령님의 가르침을 고의적으로 왜곡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던 그들은 인간적인 동기에 의해 바울을 만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기보다는 나의 생각과 인간적인 동기를 더 앞세울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뜻을 주님의 뜻에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나의 뜻을 죽이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선하신 뜻이 이뤄지는 것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좋고 귀한 일이겠습니까.
주승중 목사(주안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