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에 화학무기금지기구]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주도… 서구와 전면전 막아
입력 2013-10-11 22:15 수정 2013-10-12 00:35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이변이었다. 2년 연속 개인이 아닌 단체에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고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란 국제기구도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최근 시리아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공격이 이번 평화상 선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위원회 측 관계자는 “지난 8월 시리아 다마스쿠스 교외에서 사린가스 살포로 1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극이 벌어졌고, 이후 OPCW의 조사를 고리로 전쟁 직전까지 갔던 미국 등 서방국과 시리아 간 대치가 극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화학무기금지기구는=주요 임무는 회원국을 상대로 화학무기금지협약(CWC) 이행을 감시·감독하는 것이다. CWC는 기존 화학무기를 일정 기간 내 완전히 폐기하고, 평화적 연구 목적을 제외한 화학무기의 사용, 개발, 생산, 보유 및 이전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즉 OPCW는 특정 화학물질이 CWC의 규정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화학무기 폐기를 감독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정기 사찰 및 화학무기 제조 및 사용 의혹이 있는 회원국에 대해선 강제사찰 권한도 갖고 있다. OPCW 웹사이트는 창설 이후 16년 동안 86개 회원국에 대해 5167회 사찰을 시행했으며 그중 2700여건은 화학무기 관련 시설 사찰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포함, CWC에 가입된 189개 국가가 OPCW 회원국이다. 시리아는 14일 회원 가입이 예정돼 있어 190번째 OPCW 회원국이 된다. OPCW는 시리아가 보유한 모든 화학무기를 내년 중반까지 폐기할 계획이다. 북한, 이집트, 앙골라, 남수단은 아직 CWC에조차 가입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미얀마는 CWC에 서명했으나 비준은 하지 않아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아흐메트 우줌쿠 OPCW 사무총장은 “지난 16년간 세계 평화를 위해 기울인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올해 수상을 계기로 북한이 CWC에 가입하기를 희망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우줌쿠 사무총장은 노르웨이 NR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단 6개 나라만 OPCW 회원국이 아니다”며 “이들 국가가 수개월 내 CWC에 서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상금 800만 크로네(약 13억2100만원)를 화학무기 폐기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 사용하겠다”고 덧붙였다.
◇2년 연속 유럽이 휩쓸어 비판도=OPCW가 세계 평화에 기여한 점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지난해 유럽연합(EU)에 이어 노벨평화상이 2년 연속 유럽 기구에 수여된 데 대해 일부에서 비판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노벨위원회가 유럽 중심적인 성향’이라는 지적에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그동안 화학무기 제거를 위해 노력한 OPCW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라며 “2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예멘에서, 그 이전에는 중국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화학무기 폐기 중재안을 제시, 시리아 사태의 외교적 해결에 앞장선 것은 러시아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파키스탄의 여성교육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6)가 수상하지 못한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말랄라는 2009년 11세 나이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뒤 2012년 10월 탈레반으로부터 머리에 총격을 당했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여성교육 확대를 위한 말랄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하다. 때문에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NRK는 이날 수상자 발표 전 입수한 정보를 근거로 OPCW의 수상을 예고하면서 말랄라가 배제된 이유를 두 가지로 추정했다. 그가 평화상을 받을 경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고,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AP통신은 “OPCW의 수상은 올해로 3년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의 종료를 촉구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평화상 단체 수상 사례는=개인에게 주는 것이 원칙인 노벨상과 달리 노벨평화상은 단체에도 수여할 수 있다. 세계평화에 기여한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NGO)가 평화상을 받는 경우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평화상은 올해까지 125차례 수여됐는데 그중 25차례가 단체나 기구에 돌아갔다.
국제법연구소(IoIL)가 1904년 순수 학문적 단체로는 처음 상을 받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운동 기구인 국제평화국(IPB)이 1910년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1917년과 44년, 63년 세 차례 상을 받아 최다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민간단체도 수차례 수상했다. 국제앰네스티(AI)와 국경없는의사회(MSF)가 각각 77년, 99년 상을 받았고 지뢰금지국제운동(ICBL·97년), 국제평화군축 단체인 퍼그워시회의(95년),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85년)도 세계평화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았다.
유엔 관련 기구 중에서는 2001년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2007년 평화상의 주인공이 됐다. 앞서 2001년에는 유엔이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공동 수상했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54년과 81년 두 차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백민정 이용상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