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전기차 택시 시승기] 잠깐만요! 전기차 택시 타고 갈게요

입력 2013-10-12 04:00


지난달 6일 순수 전기차 3대가 대전 시내에서 택시영업을 시작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자사의 전기차 SM3 Z.E.를 대전시에 제공했고, 시는 택시회사 3곳에 1대씩 차를 맡겼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일이다. ‘미래의 차’로 일컬어지는 전기차 택시 3대는 지금도 대전 시내를 돌며 손님을 태우고 있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전기차 택시를 타봤다.

첫 인상은 일반 택시와 똑같았다. ‘TAXI’라고 적힌 빨간색 머리간판과 회사 이름이 적힌 스티커까지. 앞에서 보면 일반 택시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옆면에 적힌 ‘100% Electric’이라는 글자가 전기차임을 알려줬다. “전기차인지 모르고 탔다가 깜짝 놀라는 손님이 많아요.” 한 달 넘게 이 차를 몰고 있는 25년 경력의 택시기사 정양균(61)씨의 말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는지였다. 정씨는 싱긋 웃으며 “달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최고 속도는요?” “도시고속도로에서 몇 번 달려봤는데 시속 130㎞까지 거뜬합니다.”

정부대전청사 뒤편의 둔산대로. 도로가 한산해지자 정씨가 뽐내듯 가속페달을 밟았다. 소리 없이 속도가 빨라졌다. 슬쩍 계기판을 보니 시속 112㎞가 찍혔다. “선풍기 풍량을 올릴 때처럼 모터 소리만 들릴까 말까 해요. 손님들은 KTX 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더 속도를 내도 타이어 소리밖에 안난다고 정씨는 덧붙였다.

한밭대교 네거리를 지날 때쯤 갑자기 차가 급정거했다. 정씨가 제동 성능을 느끼게 해주려고 일부러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일반 차라면 ‘끼익’ 하는 소리가 났을 텐데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멈춤으로 인한 몸의 충격도 덜했다. “이 차는 스키드 마크(급정거 시 도로에 새겨지는 바퀴 흔적)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제동이 가능합니다.”

전기차는 기어 변속에 따른 충격이 없다. 가속페달을 떼면 속력이 바로 떨어져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 차를 몬 뒤로 마음이 느긋해졌어요. 페달만 밟았다 뗐다 하면 되니까요. 긴장을 덜하니까 몸도 아주 편안합니다.”

배터리를 충전시켜 운행하는 전기차의 최대 장점은 낮은 연료비용이다. SM3 Z.E.의 완충에 필요한 전기는 약 20kwH. kwH당 비용은 오후 피크시간대 기준으로 73.1원이다. 1462원이면 배터리가 ‘가득’ 차는 셈이다. 완충한 배터리로 최대 140㎞를 운행할 수 있다. 정씨처럼 하루 12시간 일하는 택시기사에게는 종일 돌아다닐 수 있는 분량이다. “운행가능 거리가 15㎞ 정도 남으면 경고신호가 뜹니다. 실제로는 이틀에 세 번 정도 충전을 하죠. 그래도 하루 3만∼4만원씩 나가는 LPG(액화석유가스)값에 비하면 거저나 마찬가지예요.” 완충까지 걸리는 시간(40분∼1시간)도 비용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불편한 점은 좁은 실내였다. 대부분 중형 이상인 일반 택시와 비교했을 때 조수석이 비좁았다. 정씨도 “덩치가 큰 손님이 앞자리에 타면 불편해한다”고 했다. 전기차는 기술과 비용 문제로 아직까지는 소형과 준중형 위주로 개발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장거리를 운행하지 못한다는 점도 전기차 택시의 한계다. 대전의 전기차 택시 3대는 각각 회사에 설치된 충전기에서 충전을 한다. 시내 다른 곳에는 충전 장치가 하나도 없다. 정씨가 소속된 유진택시의 허영자 사장은 “손님이 대전에서 논산으로 가자고 하면 못 간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외를 가지 않아도 승차거부 적용을 받지 않기로 대전시와 얘기가 돼 있다”고 말했다.

체험 도중 예상 밖의 문제도 발견했다. 무소음으로 인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다. 시승을 위해 택시회사 주차장에서 큰 길로 나가는데 입구를 지나던 남성 보행자가 갑자기 멈칫 했다. 차가 나오는지 인지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엔진 소음이 없어서 그래요. 이런 경우가 가끔 있어 조심하고 있지요.” 정씨가 경적을 두 차례 누르며 말했다.

대전의 전기차 택시 운영은 시범 사업이다. 르노삼성이 5개월간 무상으로 전기차와 충전기를 제공한다. 대전시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함께 기술 검증 및 경제성 분석을 실시하고, 단계별 전기차 택시 도입 계획을 짜고 있다. 대전은 2020년까지 개인택시 5485대와 법인택시 3370대를 모두 전기차로 교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제 도입 단계에서 예상되는 문제는 차 가격의 조정이다. 르노삼성 SM3 Z.E.의 대당 가격은 4500만원. 환경부가 전기차를 살 때 보조해주는 1500만원을 빼면 3000만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를 더 보조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자체는 보조금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려 할 것이고, 택시회사는 최대로 타내려 할 것이다.

유진택시의 허 사장은 “일정기간 뒤 교체해야 하는 배터리 비용까지 감안했을 때 차값이 현실적이지 않으면 회사로서는 구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전=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