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돈 되는 세상] 더러워 피하던 너, 퇴비로… 전기로… 이런 고마운 변이 있나

입력 2013-10-12 04:01


똥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가축분뇨를 비료로 만들어 농가는 매년 2749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가축분뇨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로 전기도 생산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해양에 버려져 자연 파괴의 주범으로 꼽혔던 가축 분뇨가 ‘냄새 없는 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태풍의 영향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위치한 계룡축협 자연순환농업센터를 찾았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돼지 똥을 모아 퇴비(분말비료)와 액비(액체비료)를 만드는 곳이다. 악취를 각오하고 찾았는데 웬걸, 숨쉬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134개 축산농가에서 매일 400t의 분뇨를 t당 1만5000원을 받고 사들인다. 그리고 버려지는 것 없이 똑같은 양의 퇴비와 액비를 생산해 낸다. 30일 동안의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액비를 손에 뿌려봤다. 색깔만 탁할 뿐 끈적임 없이 일반 생수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액비는 논산지역 농가에 정부 지원 아래 무상으로 뿌려진다. 최근에는 규제가 풀려 골프장에도 액비를 공급하고 있다. 자연순환농업센터 김완주(43) 부장장은 “신청하는 농가가 많아 공급이 달릴 지경”이라며 “입소문이 나면서 잔디 관리가 엄격한 골프장도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짜라고 대충 공급되는 건 아니다. 농가가 신청을 하면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작물과 토양을 분석해 처방을 해주는 ‘맞춤식’으로 운영된다.

농림축산식품부 천행수(36) 주무관은 “이곳이 분뇨 자원화의 메카”라고 귀띔했다. 1994년 폐기물로만 인식되던 가축분뇨를 자연친화적으로 재활용하기 위한 시도가 처음 이뤄진 곳이다. 얼핏 보면 분뇨를 저장해 놨다 빼는 것 같지만 퇴·액비 공정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공기 양과 온도 조절만으로 분뇨 내 미생물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유기 비료 만들기의 핵심이다. 계룡축협은 내년부터 액비를 500㎖ 병에 담아 도시에 유통시킬 계획이다. 이곳과 같은 가축비료 공동자원화 센터는 전국에 59개가 가동되고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150개로 늘릴 계획이다. 정책 시행의 가장 큰 어려움은 혐오시설이라는 선입견이다. 공동자원화센터를 만들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내줘야 하지만 선거를 의식해 인허가가 늦춰지는 경우가 많다. 농식품부 권재한 축산정책국장은 “가동 중인 공동화시설 견학 등으로 냄새나는 혐오시설이 아니라 지역 농가에 질 높은 비료를 공급해주는 환경친화시설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찾은 곳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가축분뇨 에너지화 사업장. 가축분뇨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전력공장이다. 사업장 내 종합상황실에 들어서니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현재 몇 t의 가축분뇨가 저장고에 있고, 얼마큼의 전력이 생산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이곳은 계룡축협의 퇴·액비 공정과 다르게 음식물쓰레기와 가축분뇨를 3대 7 비율로 섞는다. 메탄가스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음식물쓰레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전력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매일 30t과 가축분뇨 70t이 원료로 들어가 발생한 메탄가스는 자체 발전기를 통해 전기로 바뀐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전력량은 하루에 8000㎾로 한전에 팔면 매일 120만원을 받는다. 가스가 빠진 가축분뇨는 다시 공정을 거쳐 퇴·액비가 된다. 이 사업장은 지난 6월부터 운영했지만 아직 적자다. 관련 부품이 모두 독일산으로 한번 점검을 받으려 해도 독일 기술자가 와야 하기 때문에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태양열로 생산되는 전기에 비해 반도 안 되는 ㎾당 150원의 낮은 단가도 경영애로 요인이다. 방법은 있다. 메탄가스 배출량이 많은 음식물쓰레기 비중을 지금보다 높이면 전력 생산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 경우 염분이 많아져 퇴·액비로 사용할 수 없다. 에너지화 사업은 아직은 가축분뇨를 퇴·액비로 재활용하는 데 부가되는 ‘플러스 알파’ 수준으로 봐야 한다. 정부도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사업장을 운영하는 친환경대현그린 김성대(45) 대표는 “지금은 적자지만 하루 100t인 용량을 200∼300t 정도로 늘리면 수익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읍·논산=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