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독립 출판 러시… 경쟁사회속 자기표현·노출 욕구 담아

입력 2013-10-11 18:34


2006년 일러스트레이터 수신지(예명·33)씨에게 난소암이 불현듯 찾아왔다. 겨우 나이 26살의 일이었다. 난소암은 자궁경부암 다음으로 발병률이 높으면서도 뚜렷한 증상이 없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암투병기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만화 ‘3g(그램)’으로 그려냈다. 3g은 난소 하나의 무게를 의미한다. 암을 선고받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의 이야기를 시종 담담하게 그렸다. 젊은 시선으로 그려낸 투병기는 슬프면서도 공감이 가고 가끔은 유쾌하게 읽혔다.

수신지씨는 이 책을 사비로 200부를 제작, 병원과 카페 등에서 전시하고 판매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만화 북페어 ‘앙굴렘 국제만화전시회’에도 들고 가 프랑스 출반사 ‘캄브라기’에서 정식 출판했다.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은 그의 만화는 결국 지난해 5월 국내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됐다.

수신지씨처럼 인생의 극적인 순간을 ‘나만의 책’으로 펴내는 독립 출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는 독립 출판된 책만을 파는 ‘인디 서점’들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등단에 실패한 작가 지망생이 이곳에서 꿈을 향한 ‘패자 부활전’을 연다. 자신만의 여행기를 펴내는 젊은 세대, 노년을 정리하는 은퇴자 등 다양한 사람들도 미처 못 이룬 꿈에 대한 도전에 나선다.

번잡한 서울 서교동 홍대 거리 외곽 산울림소극장 뒤편에 인디 서점 ‘유어마인드’가 있다. 이곳에는 일반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독립 출판물이 가득하다. 연필 깎는 방법을 200여쪽에 걸쳐 기술한 ‘연필 깎기의 정석’, 공포영화 속 상황이 실제로 닥쳤을 때 대처법을 알려준다는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처럼 톡톡 튀는 책도 있다.

이 서점의 운영자는 이로(예명·32) 씨. 국문학을 전공하고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그는 2008년 ‘수상한 M’이라는 책을 직접 제작했다. 에세이, 소설, 꽁트, 인터뷰, 사진이 혼재된 잡지 형식의 책이다. 하지만 책을 유통할 수단이 마땅치 않자 2010년 유어마인드를 직접 열었다. 유어마인드는 ‘우리가 고른 책이지만 당신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

하루 평균 30∼50명이 발품을 팔아 방문한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손님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씨는 “오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팔리는 책은 적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책을 만드는 저자들은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 집필과 편집, 인쇄 작업까지 스스로 진행한다. 판매 부수는 많지 않다. 대중적 반향을 얻기 힘든 책이 대부분인 탓이다. 권당 50∼300부 정도 인쇄하면 10∼15부 정도 팔린다. 성공적인 케이스도 있다. 잡지 ‘도미노’의 경우 출간은 불규칙적이지만 1000부 인쇄하면 대부분 팔리더니 결국 인터넷 서점에도 진출했다.

기성 출판계는 이들의 시도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기존 출판사가 시스템의 한계로 섣불리 하기 힘든 기획들을 독립 출판인들이 시도하고 있어서다. 일부 출판사에서는 주기적으로 인디서점을 방문해 트렌드를 살펴본다. 수신지씨의 ‘3g’이 바로 독립 출판물이 기성 출판사에 흡수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처럼 사회의 관심이 커지면서 인디서점 수도 늘어났다. 2010년 ‘유어마인드’와 ‘더북소사이어티’ 개점 이후 3년간 전국에 10여곳이 생겨나 운영 중이다. ‘유어마인드’가 지난해 개최한 독립 출판물 북마켓 행사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4000여명이 방문했다.

‘더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는 “주류와는 다른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일종의 자기 만족의 수단으로 책을 내는 것 같다”며 “이를 ‘취향의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취업 등 각종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자신을 노출, 표현하려는 욕망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