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17억대 고려청자 ‘꿀꺽’

입력 2013-10-11 18:34


골동품 중개상 박모(57)씨 매장에 지난 2일 ‘심 사장’이란 사람이 찾아왔다. 박씨가 팔려고 내놓은 고려청자를 사겠다며 친구들과 감정인까지 데려왔다고 했다. 그는 “내가 데려온 감정인이 진품으로 확인해주면 현금 7억5000만원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박씨가 도자기를 꺼내자 그의 친구들은 일제히 “심 사장이 좋은 물건을 찾았다”며 호들갑 떨기 시작했다. 이어 심 사장은 “감정인에게 고려청자를 보여주고 오겠다”며 매장 밖으로 나갔다. 그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박씨는 아무 의심 없이 매장을 나서는 그에게 청자를 건네줬다.

박씨가 이날 고려청자를 본 건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심 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심사장을 찾으러 가봐야겠다. 찾으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며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박씨가 이들을 찾으러 나섰지만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1일 고려청자 진품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심모(51)씨를 구속하고 김모(51)씨 등 공범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이 훔친 고려청자는 13세기 후반 제작된 ‘청자상감 유로학문매병’(사진)으로 시가가 최대 17억원에 달하는 ‘진품’이었다. 건축업을 하며 사업 부진에 자금난을 겪던 심씨는 골동품업계 지인에게서 진품 고려청자가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범행을 계획했다.

이들은 훔친 고려청자를 서울 인사동의 한 골동품 중개상에게 3억원에 넘기려 했다. 그러나 “고려청자를 들고 돌아다니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다른 상인의 제보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