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카추마학교의 희망찾기] 얘들아, 힘들어도 ‘배움의 끈’은 놓지마!
입력 2013-10-12 04:01
자물쇠를 열고 들어간 방은 찌든 오물 냄새와 마른 풀 탄 냄새가 섞여 퀴퀴했다. 적토(赤土)를 구워 쌓은 벽돌 위에 건초 지붕 얹은 집은 창문이 없어 캄캄했다. 맨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조그만 소녀 곁에 벌레들이 윙윙댔다. 누렇게 닳아 해진 원피스 아래 비쩍 마른 다리가 축 처졌다. 지난달 15일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신음하는 궁핍의 땅, 아프리카 동남부 최빈국 말라위의 칼루루 지방 작은 마을에서 올리파(4)를 만났다.
부모 잃은 아이들은 아파도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 밖으로 나온 올리파는 무기력했다. 쥐면 으스러질 듯 얇은 팔은 할머니를 껴안지 못하고 늘어졌다. 올리파는 날 때부터 귀가 멀었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굳었다. 할머니는 기자의 팔을 잡고 아이의 다리를 가리키며 치체와어(현지어)로 다급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간절했다. 통역이 “진통제가 떨어져 아이가 자주 울어댄다는 하소연”이라고 알려줬다. 진통제를 얻으려 병원까지 갈 차비가 이틀 벌이보다 비싸다고 했다.
올리파는 오빠 하룬(9)과 할머니가 유일한 피붙이다.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엄마를 에이즈로 잃었고 아빠는 같은 병으로 엄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마을 사람들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하루 한두 끼 때울 옥수수가루를 얻어다 아이들을 먹인다. 손녀를 맡길 곳이 없어 집에 자물쇠를 걸어둔 채 일을 나간다고 했다. 오빠가 학교에 가고 할머니가 일을 나가면 올리파는 컴컴한 땅바닥에 누워 혼자 신음했다. 하룬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내달려 처음 하는 일은 동생이 아침나절 짓이겨 놓은 똥오줌을 치우는 것이었다.
하룬의 친구 멜리세(9·여)도 3살 때부터 할머니랑 단둘이 지냈다. 말라리아가 멜리세의 부모를 앗아갔다. 멜리세는 탈장으로 배앓이를 하지만 역시 진통제를 먹는 날 외에는 고통을 온전히 견디며 지내야 했다. 관절염이 심한 할머니는 손녀를 병원에 데려갈 만큼 돈을 벌지 못했다. 이웃의 염소를 대신 봐주고 품삯으로 한 달에 3달러를 벌어 겨우 옥수수죽을 쒔다. 염소를 키울 곳도 마땅치 않아 집을 두 칸으로 나둔 뒤 한쪽에 염소를 들여놨다.
멜리세는 그런 할머니가 안타깝고 고마워 의사가 되는 게 꿈이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있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겁다고 했다. 배앓이가 심한 날이나 단벌옷 빠는 날이면 학교에 가지 못해 속상하다. 학교를 마치고 물을 길어 오는 멜리세의 발가락에서 돌에 치여 생긴 피멍이 보였다.
올리파와 멜리세가 겪는 아픔은 말라위에선 흔하다. 칼루루 지방 18개 마을에만 고아가 800명이고 그중 에이즈 보균자는 121명이나 된다. 에이즈 검사를 받은 아이들만 셈한 통계여서 실제는 훨씬 많다고 한다. 말라위는 국민 4명 중 3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지내는 세계에서 14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2010년 극심한 흉년이 들어 삶은 더욱 모질고 가혹해졌다. 나라살림의 절반을 해외원조로 꾸리는 정부에 복지는 벅찬 일이었다.
옥수수죽 시마를 아시나요
이튿날 오전 11시쯤 말라위 카추마 지역 초등학교 운동장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무에 매달린 종이 울리자 1600명 가까운 아이들이 일제히 연기가 피어오른 쪽으로 내달렸다. 점심시간이다.
간이주방에 설치된 철통 솥 4개에서 옥수수가루를 묽게 풀어 만든 영양죽 ‘시마’가 끓고 있었다. 식사는 1학년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이 플라스틱 그릇을 내밀면 인근 마을에서 온 아주머니들이 국자로 한술을 퍼주는 게 배식의 전부였다.
죽을 받아든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흘릴까 살금살금 걸어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마른 겨울이 지난 9월의 말라위는 바람이 잦아 묽은 죽이 금방 모래로 질컥였다. 플라스틱 그릇은 200개가 채 안돼 나중에 온 아이들은 먼저 온 아이들의 식사를 기다려야 했다. 배식을 도우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먼저 온 아이들을 채근했다. 아이들은 조금 더 먹으려고 손가락으로 그릇을 한 번 더 긁은 뒤 반납했다. 8학년 배식이 끝나기까지 꼬박 1시간50분이 걸렸다.
카추마 초등학교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를 통해 결연을 맺은 아동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부터 이 학교에 급식지원을 시작했다. 하루 급식에 50㎏ 시마 가루 3포대가 든다. 1포대가 우리 돈 2만7000원 정도여서 1년에 2200만원이면 1600명 가까운 아이들에게 매일 1끼 식사를 줄 수 있다. 무료급식을 시작하면서 학생이 300∼400명 늘어 올해 1596명이 됐다.
교육, 빈곤의 고리를 끊을 희망
말라위에서 교육은 먹고 사는 일보다 급하지 않다. 11∼12살 때부터 일하는 아이가 많다. 카추마 초등학교도 1∼3학년은 학년별로 200∼300명씩 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적어 6∼8학년은 110명 안팎에 불과하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은 한해 10∼20명에 그친다.
교사 오스틴 캄잠바씨는 “배식이 시작되자 다른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까지 전학 오기 시작했다”며 “무료급식은 단순히 영양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배움의 끈을 이어가도록 해주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굿네이버스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면 생리대 보급도 같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말라위는 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여자아이들은 생리가 시작되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생리대가 없어서 나뭇잎을 대거나 진흙을 뭉쳐 가리는 일도 많다고 한다. 결석이 반복돼 학교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일터로 내몰리고, 가난에 겨워 몸을 팔거나 조혼(早婚)으로 도피한다. 배우지 못한 어린 신부가 낳은 아이들은 다시 부모의 삶을 반복한다.
최주용 말라위 지부장은 “롤 모델이 없어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70% 이상은 운전사라고 답한다”며 “배움을 통해 자존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빈곤아동 돕는 변정수씨 가족
지난달 18일 릴롱궤에서 비포장도로를 1시간 달려 도착한 카추마 지역개발사업장에 ‘맘(mom) 센터’ 3호의 윤곽이 드러났다. 붉은 흙 위로 건물 외벽이 2m 정도 올려졌다. 인부 4명이 지붕을 얹느라 분주했다.
배우 변정수씨 가족이 차에서 내리자 인근 마을 주민 100여명이 모여들어 덩실덩실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지코모 관비리(감사합니다).” 맘센터 건립은 변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굿네이버스의 글로벌프로젝트다.
변씨는 2010년 네팔 봉사활동을 갔다가 11살 소녀 뿌자를 만났다. 아빠는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담석증 치료를 받으러 인도에 가서 뿌자 혼자 동생 2명을 키우고 있었다. 변씨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땔감을 베고 자기 밥을 아껴 동생 먹이던 뿌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먹먹해졌다”며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엄마의 마음으로 빈곤아동을 도울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변씨의 기부금과 후원자 기금으로 네팔과 필리핀에 맘센터 1·2호가 건립됐고 3호는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변씨 부부는 지난해 결혼 17주년을 기념하는 ‘리마인드 웨딩’을 열어 하객들로부터 받은 축의금 3000만원을 말라위 맘센터 건립 자금으로 기부했다.
변씨는 지난달 13일 가족과 함께 8일 일정으로 말라위 봉사활동을 왔다. 말라위는 그가 10년째 굿네이버스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찾은 9번째 나라다. 해외 봉사활동은 2005년 “결혼 10주년을 의미 있는 일을 하며 기념하자”는 남편 류용운씨의 제안으로 지진해일 피해를 입은 방글라데시에 가면서 시작했다. 딸 채원·정원양도 변씨 부부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이번에 맏딸 채원양은 카추마 초등학교에서 1일 교사로 미술수업도 했다. 변씨는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 없는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됐다”며 “빈곤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는 엄마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생계 문제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후원문의 1599-0300, www.gni.kr).
릴롱궤=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