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밀양을 위한 변명

입력 2013-10-11 17:43


경남 밀양에서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극한 대립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불편하다. 70∼80대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농산물을 한창 수확할 시기인데도 논과 밭, 들에 없다. 송전탑 공사 현장 인근 움막 등에서 공사 저지를 위한 결사항전을 연일 외치고 있다.

한국전력과 정부는 ‘국책사업’을 막무가내로 가로막고 있다고 성토하며 공권력을 동원,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주민들에게는 ‘지역이기주의’나 ‘님비’란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 밀양 송전탑은 울산 울주군에 짓고 있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기 위한 송전시설의 일부다. 5개 시·군 161기 송전탑 가운데 울산, 부산, 경남 양산시·창녕군 등의 109기는 완공됐고 밀양지역 4개 면의 52기가 주민 반대로 공사가 중단·지연되고 있다. 한전은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송전탑 공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경찰병력 동원과 가구당 400만원의 보상금 지급 등 지원책 제시를 통해 한전의 공사 재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은 요지부동이다. 4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 높이의 765㎸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면 청정자연에 기반을 둔 지역 생산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송전탑과 송전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코로나 소음으로 가축은 물론 사람도 해를 입을 것이란 걱정도 많다. 주민들에게 송전탑은 ‘이념’이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밀양을 지나는 765㎸ 송전탑이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한전의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고리∼신울산, 고리∼신양산, 고리∼울주 등 기존 345㎸선로의 용량을 늘리면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충분히 우회 송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765㎸ 송전탑을 밀어붙이는 건 고리에 있는 노후 원전 4기를 수명을 연장해 계속 사용하고 신고리 5∼8호기까지 추가 건설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환경·시민단체 등은 밀양 송전탑 사태를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방향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전이나 화력발전소에서 대량 생산된 전기를 초고압 송전선을 통해 멀리 있는 대도시나 공장으로 보내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된 현재 방식은 ‘제2, 제3의 밀양 사태’를 부를 수밖에 없다. 발전소 증설을 통해 전기 공급을 계속 늘려가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만큼 전기요금 현실화 등을 통해 소비를 줄이는 수요관리 정책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풍력, 태양광, 지열 등 친환경·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에너지 생산·소비 체계를 중앙집중형에서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원전을 증설하지 않으면 전력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전 의존도가 30%에 달했던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정기 점검을 위해 일본 내 원전 54기 중 52기의 가동을 일제히 중단했지만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17기 중 8기를 폐기했고 나머지도 2022년까지 모두 폐기하기로 결정하는 등 여러 선진국들이 탈원전으로 가는 추세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고 합리적이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시간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적 동의 절차를 생략한 채 특정 지역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밀어붙이는 국책사업은 후진적이기도 하고 결국 재앙으로 귀결될 뿐이다.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단적인 예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