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투쟁과 투정 사이

입력 2013-10-11 19:28

부요하게 살던 한 중년 남자가 운영하던 기업이 망해 재산을 깡그리 잃고 월세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자는 다시 일어서려 안간힘을 쓴다. 택배 기사가 되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지고 달동네를 누비고 다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는 삶을 투쟁하며 산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살 여자가 아니다’라고 반복해 말하며 여전히 허영을 부린다. 그녀는 삶을 투정하며 사는 것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한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을 산다는 것이 삶을 투쟁하며 사는 것과 삶을 투정하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 속의 남자는 삶을 투정할 새가 없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파른 언덕길을 헐떡이며 오르내리고 처가에 맡긴 자식들이 보고 싶어 처갓집에 가서 구박을 받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의 어깨는 가족이라는 짐이 더 무겁게 짓누르곤 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싸늘하게 돌아누워 남편의 무능을 탓하고 남편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투쟁하며 사는 남자의 남은 한 가닥의 힘마저 삶을 투정하며 사는 아내가 빼앗아 버린다.

이 이야기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 가정에도 투쟁하며 사는 사람과 투정하며 사는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투쟁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투정하며 사는 것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짐을 내려놓는 그날까지 사람으로,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면 서로가 지탱할 힘이 되어 주고 짐을 나누어 져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장 2절)

힘들게 살고 있는 지인의 아내가 어느 날 남편의 등을 보니 너무 쓸쓸해 보이고 작아 보이더라고 했다. 투정하며 사는 사람이 투쟁하며 사는 사람의 등을 보는 일, 그래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 그것이 투쟁과 투정 사이에 있어야 할 일이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