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민들레 농부’라 불리는 이유
입력 2013-10-11 17:21
가을 들판에 본격적인 추수가 한창이다. 햇곡식을 거두는 농부들을 바라보니 곁에서 지켜보는 애벌 농부의 마음도 흐뭇하다. 진정한 감사는 애쓴 땀 흘림 끝에 오게 마련이다. 곧 재개된다는 쌀 수입 소식을 들으면서 불안해지는 것은 농촌에 살기 때문만이 아니다. 쌀만큼은 꼭 우리 것으로 지키고 싶은 것은 온 국민의 심정일 것이다.
오랜만에 농부들의 풍물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화도 길목에 위치한 김포 문수산성교회 앞마당에서였다. 주일 저녁 마을잔치를 겸한 봉헌식이 제법 성대하게 열려 축하차 참석했다. 내가 벌인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 종종 거들어준 황인근 목사의 초청에 응한 것이다. 비록 잔치 자리를 채워주는 일일망정 내 몸으로 품앗이를 하고 싶었다. 흥겨움에 함께 감사 마당을 즐겼으니 마음까지 품을 나눈 셈이다.
마을을 소란하게 한 잔치는 이 교회가 새로 지은 부속건물 봉헌식이었다. 건물 이름이 참 친근하다. ‘민들레 농부’. 교회 안에서 공모를 했다는데, 마을에서 가장 흔한 꽃인 민들레에다 농부를 붙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새 집의 목적과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아마 번식력도 좋은 민들레처럼 동네방네 이웃사랑이라는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려는 뜻일 것이다. 누구 말에 민들레는 오뉴월 성령의 꽃이라고 빗대지 않던가.
‘민들레 농부’는 양파망에 진흙을 담아 쌓아 올리는 새로운 공법으로 지었다. 이른바 ‘흙 부대 집’인데 무려 70t의 진흙이 들어갔다고 한다. 웃음보가 터지는 공사 보고를 듣자니 겨우 21평 규모의 흙집 하나 짓는데 공사 기간이 무려 433일이나 걸렸다. 날수까지 강조하는 것을 보니 힘든 흔적이 배어 나온다. 이 건물의 용도는 동네 사람을 위한 찜질방과 마을 찻집이다.
항상 신공법은 시행착오를 동반하는 법이다. 특히 환경친화적인 방식은 훨씬 많은 사람의 땀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유기농 농사처럼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이 몇 배나 들었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내 몸으로 체득한 산 공부였다. 게다가 없는 농촌살림에 스스로 노동하고 교인들이 힘을 모았으니 바쁜 농번기를 몇 차례 거치며 얼마나 마음이 초조했을까 싶다.
황 목사의 말을 듣자니 시작이 반이라고 작년 여름에 이미 서둘러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릴 준비를 했다고 한다. 문제는 초기 비용이 다 소진되어 지붕을 올릴 여력이 없었다. 차일피일 기다리는 중에 곧 장마가 닥쳤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지붕을 만들 수 있도록 하나님의 후원을 부탁드렸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가을 태풍이 찾아왔다. 가뜩이나 바람이 센 한강 하구에 인접한 까닭에 주택 2층의 지붕마저 불안했다.
작년 초가을, 태풍 경보를 듣고 창문마다 안전판으로 테이프를 붙이던 뉴스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재난방송에서 실시간 태풍 경로를 중계방송했고 온 국민이 집안에서 추이를 지켜봤던 불안함도 떠오른다. 그날, 초조하게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황 목사도 이제 태풍이 ‘북쪽으로 넘어간다’는 뉴스를 들으며 안도했다고 한다. 그 순간 ‘뿌지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의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뉴스는 정확했다. 문수산성교회는 북쪽으로 넘어가는 휴전선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흙집 새 지붕을 올릴 비용을 마련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아직 쓸 만한 지붕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남의 집에서 피난살이를 해야 했다.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그 자리에서부터 희한한 은혜가 시작됐다. 피해 소식이 알려지자 여기저기 교회에서 관심을 보였고, 성금이 쌓이기 시작하더란다.
결국 주택 지붕을 새로 하고, 원하던 흙집 지붕까지 깨끗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교인들의 노심초사야 오죽했을까. 새 집을 지으면서 황 목사는 참 알뜰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의 까마귀처럼, 로뎀나무 아래 천사처럼 또 누군가를 협력자로 보내실 것을 믿는다.
‘민들레 농부’는 강화 오가는 길에서 명물로 자리잡을 것이다. 부디 그 명물이 마을과 함께하는 모범 사례로 널리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농촌교회마다 마을 센터를 짓고 봉헌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제 곧 추위가 닥칠 텐데 도시의 전세와 사글세 교회들, 그리고 반지하 교회들은 평안한 것일까?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