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면세점 이야기’ 출간한 최영수 전 롯데면세점 대표
입력 2013-10-10 18:43
1984년 이탈리아 로마의 명품 브랜드인 불가리 본사 앞. 이 건물에 들어가려던 한 한국인 남자를 도어맨이 ‘들어갈 수 없다’며 한사코 막아섰다.
이 남자는 롯데면세점 최영수 전 대표였다. 롯데면세점에 불가리 매장을 열기 위해 서울에서 10시간을 날아왔지만 불가리 측은 만나주지 않았고, 도어맨을 통해 쫓아냈다.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끈질기게 구애를 펼쳤다. 마침내 몇 년 뒤 담당자인 브로제티씨가 최 전 대표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다.
최 전 대표가 꺼내든 카드는 권투였다. 그는 “나는 권투선수 출신이다.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는 최고의 선수”라고 했다. 대화는 3시간 동안 이어졌고 몇 달 뒤 브로제티씨는 불가리 회장단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1993년 3월 불가리는 롯데면세점 입점을 결정했다.
최 전 대표가 지난해까지 34년간 몸담아 왔던 면세점 세계의 다양한 풍경을 담아낸 ‘면세점 이야기’를 10일 출간했다. 그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면세점이 사치를 조장하고 세금을 면제받는 것에 비판만 하면 오해”라며 “이를 바로잡고 면세산업의 순기능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한국의 면세산업이 세계 1위에 오르기까지 펼쳤던 다양한 노력이 담겨 있다. 특히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를 위해 기울인 노력은 눈물겨웠다. 최 전 대표는 루이비통, 불가리, 에르메스 등 해외 유명 고가 브랜드를 한국에 최초로 유치했다. 그는 “면세점으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해외 유명 브랜드를 유치해야 했다”면서 “1980년대만 해도 한국은 약소국이었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3년 해외를 오가야 했다”고 말했다.
해외 고가 브랜드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사치를 조장한다는 불편한 시선이었다. 최 전 대표는 “내국인은 구매 금액이 제한돼 있다”면서 “오히려 해외 관광객들이 국내 면세점에서 구매할 경우 유통 마진이 우리에게 들어오기 때문에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불거진 대기업 면제점 독식 논란에 대해서도 “면세점 자유화로 1988년 면세점을 29개로 늘렸지만 롯데, 신라, 워커힐 등 대기업만 살아남았다”면서 “면세사업은 중소기업이 하기 어려운 비즈니스”라고 설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