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총리 한때 피랍… ‘알카에다 소행’ 촉각
입력 2013-10-10 18:17 수정 2013-10-10 22:15
리비아 임시 국가수반 알리 제이단 총리가 전직 반군 요원들에게 납치됐다 몇 시간 만에 풀려났다. 미군이 최근 리비아에서 알카에다 관련자를 체포한 것과 관련해 정부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리비아 정부는 미군의 군사작전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제이단은 수도 트리폴리의 코린티아 호텔에서 10일(현지시간) 오전 4시쯤 납치됐다. 총으로 무장하고 들이닥친 남성들은 제이단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대기 중인 호송차에 싣고 모처로 떠났다고 호텔 직원이 CNN에 설명했다.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총격은 벌어지지 않았다. 괴한들은 제이단을 정중히 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 코린티아 호텔은 트리폴리에서 유일한 5성급 호텔이다. 제이단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이 거주한다. 2008∼2010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과 수차례 비밀리에 만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리비아 정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띄운 성명에서 제이단이 전직 반군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붙잡혀 어딘가로 끌려갔다고 밝혔다. 리비아 혁명작전실과 범죄척결위원회를 배후로 지목했다. 혁명작전실은 검찰 지시에 따른 체포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체포영장 발부 사실을 부인했다.
행방을 알 수 없던 제이단은 오전에 풀려났다. 모하메드 압델아지즈 외무부 장관은 AFP통신에 이 사실을 전하면서도 더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도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제이단 납치는 미군 특수부대가 지난 5일 트리폴리 남부에서 기습적 대테러 군사작전을 벌인 지 5일 만에 벌어졌다. 당시 알카에다 지도자로 추정되는 아부 아나스 알 리비(본명 나지흐 압둘 하메드 알루카이)가 체포됐다. 현재 미군에 구금된 그는 1998년 8월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214명을 숨지게 한 미 대사관 테러를 지휘한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미군 군사작전 직후 리비아 정부는 사전에 알지 못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자국 허가를 받지 않은 ‘납치’로 묘사하며 미국에 공식 해명을 요구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적절하고 합법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미군과 공모하거나 작전을 허가했다며 비난한 단체 중에 혁명작전실이 있었다.
혁명작전실은 알 리비 체포작전을 리비아 정부가 알고 있었다는 케리 장관의 발언이 나와 제이단을 체포한 것이라고 밝혔다. AFP통신은 혁명작전실이 원칙적으로 국방부와 내무부 지시를 받는 단체로 트리폴리 치안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제헌의회 투표로 선출된 제이단은 카다피 축출로 공석이 된 대통령 대신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제이단은 최대 정당 국민연합의 지지로 강경 이슬람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정의건설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이단은 외교관 시절 카다피를 공개 비판하고 스위스로 망명한 뒤 리비아 반정부 운동을 벌이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