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늘 광역버스 서서 타고 온 당신…‘불법’인 건 아시나요?

입력 2013-10-11 05:01


“뒤로 좀 들어가 주세요!” “더는 못 들어간다니까요, 아저씨!”

직장인의 퇴근 행렬이 이어지던 지난 8일 오후 7시30분쯤. 서울 역삼동 신논현역 정류장에서만 15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 논현역 정류장에 도착한 9700번 버스에 다시 사람들이 밀물처럼 올라탔다. 앞뒷문을 모두 열어 계단까지 승객들로 가득 찼지만 버스를 기다리던 줄은 반도 줄지 않았다. 기사가 다음 차를 이용해 달라며 소리를 질러도 사람들은 막무가내다.

‘짐짝’이 된 승객들 사이로 누군가 교통카드를 찍으려고 팔을 뻗자 주위의 여러 명이 동시에 눈살을 찌푸린다. 쌀쌀한 가을 저녁인데도 버스 안에선 연신 땀을 훔치기 바쁘다. 앞문 계단까지 가득 들어선 승객들이 사이드미러를 계속 가리자 결국 기사도 뿔이 났다. “그렇게 사이드미러를 가리면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와 서울 양재동 한국교육개발원을 오가는 9700번은 출퇴근 시간에 직장인들로 가장 붐비는 광역버스 중 하나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이들은 매일 버스에서 이런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136개 버스 노선에는 차량 1707대가 있고 오전 7∼9시 출근 시간의 하루 평균 이용자만 48만9318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처럼 익숙한 광역버스의 ‘입석 운행’이 불법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로교통법 39조와 시행령 22조는 광역버스를 비롯한 좌석버스의 승차인원이 정원의 11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광역버스처럼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를 지나는 경우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도로교통법 67조에 따라 정원 내 승객이 모두 안전띠를 착용해야 한다. 승객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을 경우 기사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매일 아침저녁 콩나물시루처럼 승객을 선 채로 가득 태우고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를 질주하는 ‘만원 광역버스’는 모두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와 경찰, 버스회사는 조금씩 다르면서도 결국 같은 얘기를 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광역버스 입석 운행은 위법인 데다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 우려도 커 안전문제가 심각하다”면서도 “수도권 출퇴근 인원이 버스로 몰리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단속은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재정 지원을 해주며 출퇴근 시간 증차를 독려하고 있지만 재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전폭적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2009년 입석이 원칙적으로 제한된 ‘광역급행형 M버스(Metropolitan Bus)’를 경기·인천과 서울 노선에 투입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입석 운행을 엄격히 제한하니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하는 승객이 급증해 민원이 빗발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임을 올리면 된다는 제안도 있지만 적정선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버스회사는 지원금 수령 절차가 까다롭고 큰 도움이 안돼 입석 운행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 광역버스회사 관계자는 “지원금도 받기 어려워 증차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고질적인 문제를 풀려면 준공영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토부·경찰·버스회사는 모두 ‘입석 광역버스’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승차인원을 초과하면 기사의 시야가 좁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적재중량을 초과해 브레이크 제동거리도 길어진다. 승객을 많이 태우느라 정차 시간이 늘어나면 배차 간격을 지키기 위한 과속 운행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법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광역버스는 오늘도 시민의 안전에 눈을 질끈 감은 채 질주하고 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