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여성 구직 현장 르포] “아줌마, 마땅한 일자리 얻기 참 힘드네요”

입력 2013-10-10 17:59 수정 2013-10-10 22:37


결혼 때문에, 아이를 기르기 위해, 그리고 경기가 좋지 않아 직장을 그만뒀던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다시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해 일자리를 잡기 위한 열기는 뜨거웠지만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10일 서울 양평동 남부고용센터에서는 ‘경력단절여성 중심의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가 열렸다. 전국 35개 고용센터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 행사는 박근혜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경단녀들의 재취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오후 1시30분부터 진행된 이 행사는 시작 전부터 성황을 이뤘다. 지하 2층 대회의실에 마련된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찾아든 경단녀들의 구직 열기로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후끈했다.

30대 중반∼40대 초중반이 주를 이룬 구직자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구인업체에 대한 평판을 이야기하고 새 직장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메이크업 공간에선 조금 더 젊어 보이고 싶은 구직자들이 열심히 화장을 고쳤다.

결혼 전 15년 동안 도배업을 했다는 전혜정(44)씨는 “도배일은 벌이는 괜찮았지만 허리와 목이 너무 아파 신물이 났다”며 “늦게 결혼한 이후 일을 그만뒀지만 무작정 쉬기에는 젊음이 아까워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취업성공 패키지’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조리기능사 과정을 수강했다고 한다. 한식과 양식 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조리사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전씨는 “일단 경력을 쌓자는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사람을 뽑는 곳이 많지 않다”며 “주위에 자격·면허를 가진 주부들이 많은데 재능을 살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모두 188명을 채용할 계획으로 16개 업체가 참여했다. 하지만 채용 수요는 고객상담원, 판매사원, 패스트푸드 매장 매니저에 집중됐다. 집에 눌러앉기 전 경력을 살리고 싶어 하는 경단녀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엔 한참 모자랐다.

친구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김혜영(가명·45)씨는 “가구 대리점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지 8개월째”라며 “처녀 때부터 사무원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사무직을 구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뽑는 곳이 적어 실망”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이기원(가명·45)씨는 “얼마 전 정규직으로 전환되긴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왕 노릇을 하려 드는 악성 고객들에게 시달리는 게 지겨워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구인구직 행사에 많이 다녀봤지만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간병인, 판매사원, 콜센터 등 남들이 기피하는 곳에 한정돼 있다”며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을 받쳐주는 역할이 우리 아줌마들의 운명인가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규모 채용 박람회를 상상하고 행사장을 찾은 일부는 구인업체 수가 많지 않고 직종이 한정돼 있음을 확인하곤 바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반면 업체들은 경단녀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다. 한 업체 채용 담당자는 “올 초 판매사원으로 6명을 채용했는데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본인이 다시 일을 하고 싶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주말과 야간 근무를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체력적인 문제 탓이라면 시간제로 일을 시킨다고 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