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바르샤바∼민스크∼모스크바 2777㎞… 17개국 111명 언어는 달라도 “평화를 주소서”
입력 2013-10-10 17:36
2차 세계대전 당시 할아버지가 민스크에서 전사했다는 독일인 사빈 랑스도프(51·여) 목사는 “베를린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이 열차는 독일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구간”이라며 “우리 민족이 과거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준 나라들을 지나며 독일인을 대신해 사과하고, 또 이들과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유럽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교회에서 사역할 과제를 찾기 위해 평화열차에 탑승했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기차 내 환경은 열악했다. 길이 2m, 폭 1.5m, 높이 2.5m에 불과한 침대칸에 3층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에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다. 노후된 선로 때문인지 열차는 전구간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여독이 아니었다면 쉽게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열차 참가단의 표정에서는 피곤함 대신 희망과 설렘이 읽혔다. 열차 내부 환경 때문에 예정됐던 세미나 등은 취소됐지만, 참가자들은 오전 7시부터 각 칸별로 기도회를 이어갔다. 다른 승객들 때문에 큰 소리로 기도하지는 못했지만 저마다의 언어로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해결을 위해 기도했다. 행동의 자유가 제한된 환경에서도 참가단은 ‘평화열차 입체 퍼즐’을 맞추기도 했다. 그룹별로 완성된 퍼즐은 다음달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현장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서나라(23·여)씨는 “솔직히 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이런 환경 때문에 평화열차에 동참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적과 교단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신앙적으로도 많이 성장하게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스위스에서 참가한 로만 아프바비라(29)씨는 “스리랑카 출신인 부모님이 오랜 내전을 경험하신 분이라 어려서부터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며 “부모님은 늘 내게 ‘평화를 이루려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든 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아프바비라씨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곳을 찾지 못할 것 같아 부지런히 마음에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여행객들도 평화열차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다. 2달간의 여행에 나섰다는 서독 출신 독일인 헬무트(77)와 일세(74·여) 칼콘스토우퍼 부부는 “독일의 통일은 독일인에게 기적처럼 다가온 선물”이었다며 “서독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동독과 러시아의 체제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부부는 “냉전 시절에도 동독과 서독은 사람과 편지, 물자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다”며 “냉전이 끝난 이 시대 한반도의 통일은 결국 양측 지도부의 결정에 달린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들은 평화를 위한 한국인들의 노력이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는 “부산에서 출발해 육로로 베를린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역설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라며 “이번 평화열차 프로그램은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한반도의 통일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열차 참가자들로부터 한반도 평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이번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참가단은 모스크바에서 2박 3일간 러시아 정교회 및 개신교 단체들과 함께 평화 콘퍼런스, 평화순례 등을 진행한 뒤 12일 오후 베이징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 두번째 구간에는 95명이 탑승할 예정이다.
모스크바=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