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숨가빴던 대륙… 100년을 성찰하다
입력 2013-10-10 17:29 수정 2013-10-10 22:20
백년의 급진/원톄쥔/돌베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비단 북한 변수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까지 겹쳐 이제 이웃나라 중국의 움직임은 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중요한 변수가 됐다. 최근 중국을 연구한 국내 학자들의 주목할만한 저서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사회에 대한 정보는 부족해 일반인들이 정확한 분석을 접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중국의 비즈니스업계 현실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며 실용서처럼 읽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더구나 냉전 체제가 종식된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국내 학계는 중국을 미국이나 서구의 눈으로 분석하는 데 아직도 익숙하다. 중국의 내부 시각으로, 특히 그들의 현재를 고찰한 책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못한 탓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책은 그동안 ‘중국식 현대화는 서구의 것과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저자의 논문과 강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베이징 소재 중국인민대학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의 학과장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농촌 전문가다. 1996년 ‘삼농(三農)’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 중국 내부에서 주목받았고, 이후 현대 중국 사회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상가 중 하나로 꼽힌다. ‘삼농’은 급격한 현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 계층 문제의 당사자인 농민, 발전 동력을 상실하고 내부 해체에 직면한 지역 문제로서의 농촌, 경쟁력 상실과 저소득 구조의 고착화라는 산업 문제로서의 농업을 뜻한다. 이 같은 그의 문제제기는 2000년대 들어 중국 공산당이 2003년 ‘민생을 위한 새 정치’, 2005년 ‘신농촌 건설’, 2007년 ‘생태 문명’에 대한 강조 등 친민생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사상적 근거로 작용했다.
그는 지난 100년간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서구처럼 해외 식민지를 통해 부를 모으고 사회적 모순을 전가할 수 없었던 중국은 ‘내향형의 원시적인 축적’에 의해 공업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농촌의 집단화와 도시 지역 주민을 관리하는 독특한 ‘딴웨이화’를 통해 농업의 잉여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막대한 노동력을 국가의 기본적인 건설에 집중 투입해 빈약한 자본을 노동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산업자본을 창출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런 ‘총동원체제’와 같은 급진적 정책을 통해 중국이 지난 100년간의 자본 결핍을 극복해왔고, 이는 사실상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가 그대로 수용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그의 분석이 좌우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철저히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현실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57년 중국 공산당이 인민 동원을 통해 이들을 착취하고 있다며 비판한 지식인들을 ‘우파’로 몰아붙인 ‘반우파운동’은 오히려 ‘반좌파운동’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1950년대를 극좌의 시대로 규정하지만, 세상 어디에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 단계를 ‘좌’로 구분하느냐”며 “당시 국가자본주의를 대표해 국가의 공업화를 위한 원시적 자본 축적을 실행해 온 마오쩌둥과 지도자들을 과연 ‘좌파’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런 급진적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서구 자본주의 사회만큼 심각한 모순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중국 농촌의 완충력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농촌 문제에 주목한다.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 대형 개발도상국에 존재하는 인구 절반을 넘는 빈민이 거주하는 대형 빈민굴이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그 충격을 농촌이 완화해 수용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최근 중국의 농촌 사회로 급격하게 유입되고 있는 사적 자본과 토지 거래 움직임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구 시각에서 벗어나 중국의 현대화를 성찰하는 그의 관점은 중국을 벗어나 전 세계를 바라보는 틀로서도 주목할만하다. 그는 ‘오바마-김정일 딜레마’라는 표현으로 미국과 북한 사회가 처한 위기를 분석한다. 현대화를 추구하는 어떤 경제체제라도 막대한 ‘현대화 비용’을 외부나 아래로 전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체제를 유지하든 그 방향으로 나아기만 할 뿐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는 곤경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탈북자’ 역시 사실은 ‘탈농자’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동아시아 국가 중 누구보다 먼저 농업 현대화를 이룬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해체로 석유 공급이 끊어지자,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중국 사상가의 자본주의와 현대 중국 사회에 대한 분석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김진공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