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언 첫 소설집 ‘무엇을 할 것인가’
입력 2013-10-10 17:23 수정 2013-10-10 22:25
정태언(52·사진)은 늦깎이 소설가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단편 ‘두꺼비는 달빛 속으로’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게 2008년. 마흔일곱 때였다. 늦은 만큼 묵직한 실존적 무게감과 성찰이 돋보인다는 게 그의 작가적 개성이 되고 있다. 그 뒤늦음이란 그가 미래에 태어날 소설을 뱃속에 담은 채 차갑고 거센 북방의 바람과 눈을 맞았음과 결부된다. 그러니 그의 소설은 얼어붙었던 북방의 기억이 봄이 오고도 한참 뒤에야 풀리는 겨울 강처럼 뒤늦게 녹아내린 끝에 씌어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첫 소설집 ‘무엇을 할 것인가’(도서출판 강)는 동구권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한 이후 우리의 삶의 행로가 어느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지를 적시하고 있는 과거 시점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의 어떤 분기점을 회상하는 차원의 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시간을 갱신하는 면모를 지닌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주머니 속 자작나무’다. 주인공 ‘나’는 러시아에서 어렵게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강의하러 가는 길에 학과 조교로부터 폐강 소식을 들은 어느 날 종묘를 떠돌다 우연히 자작나무를 만난다. 그리고 북방에서나 자라는 것으로 알았던 자작나무가 종묘에서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과거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현재의 삶까지 견딜 수 있게 하는 특별한 힘이자 자존심으로 다가온다. “그건 누구의 나무도 아니었다. 문득 자작나무가 종묘에 깃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을 거슬러 내게 날아온 나무. 나는 주머니 속 자작나무 껍질을 만지작거리며 한 걸음 대륙을 향해 내딛었다.”(147쪽)
정태언은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망각의 영역에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들을 찾아내 우리들에게 잃어버린 생의 가치를 기억하게 만드는 작가다. 이제 막 한 권의 책을 갖게 된 첫 걸음의 소설가지만 그의 밀도 있는 글들은 과거를 통해 지금 여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으로 충만하다.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고픈 소설집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