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자만과 고집이 부른 화

입력 2013-10-10 17:38


1위 노키아 39%(6800만대), 2위 RIM(블랙베리) 20%(3500만대), 3위 애플 15%(2500만대), 4위 HTC 5%(800만대), 5위 기타 21%(3500만대).

시장조사기관 SA가 집계한 2009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과 판매량이다. 하필 2009년을 언급하는 이유는 블랙베리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블랙베리는 2009년이 전성기였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그해 블랙베리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으로 꼽았다. 당시 연 수익 증가율이 84%에 달했다. 세계 점유율은 20%로 2위였고, 특히 북미 시장 점유율은 51%로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블랙베리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현재 주가는 수직 낙하해서 당시보다 90%이상 떨어졌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 2분기 2.8%로 이름도 없는 ‘기타’로 분류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몰린 블랙베리는 현재 인수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달 47억 달러 규모로 인수에 합의한 페어팩스 컨소시엄이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예비 인수자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84년 컨설팅업체로 출발한 블랙베리는 99년 첫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과 이메일 체크가 가능한 블랙베리 폰은 이동이 많은 월가 전문직 종사자들과 정치인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블랙베리 사랑은 ‘오바마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익히 알려져 있다. 후보 시절 전국으로 유세를 다닐 때도 항상 블랙베리를 손에서 놓을 줄 몰랐다. 당선 이후 2009년에는 보안상의 문제로 백악관 참모, 국가안보국(NSA)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블랙베리를 버리지 못했다. 중독성이 강하다 보니 마약을 뜻하는 ‘크랙(Crack)’과 합쳐져 ‘크랙베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블랙베리는 정상에 서 있던 기업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블랙베리는 업무용으로 기업 고객을 장악했지만 스마트폰 혁명의 중심에 서 있던 일반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터치스크린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도 키보드 방식만 고집했다. 터치스크린으로 전환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아이폰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만 남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 ‘앱 생태계’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12만개의 앱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필요한 앱은 없고 그나마도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았다.

다시 2009년으로 가보자. 1위였던 노키아의 점유율은 현재 블랙베리(2.8%)보다 조금 많은 3.2%다. 노키아는 지난 9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전화 부문을 매각하고 통신장비 업체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최근 노키아의 최대 패착이 ‘미국 시장의 간과’라고 분석했다. 노키아는 유럽과 아프리카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무시하면서 자신을 잡아먹을 애플과 구글(안드로이드)의 잠재력을 무시했다. 경쟁업체들이 애플의 iOS와 함께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할 때 자신이 만든 심비안이 최고라고 우기며 너무 오래 매달렸다. 결과는 뻔했다.

블랙베리와 노키아의 몰락에는 자만과 고집 속에 시대의 흐름에 눈과 귀를 닫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플처럼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 조류를 타고 함께 흘러가야 한다. 서글프지만 그게 2등 기업들이 살아남는 생존의 기술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맹경환 국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