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돈] 갈등의 한국사회학
입력 2013-10-10 17:42
갈등사회학이라는 것이 있다. 한 사회를 들여다볼 때 갈등이 있는 곳을 살펴보면 그 사회가 가장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문제도, 다툼도 없는 곳에서는 그 사회의 실제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덮여 있는 곳이 많다. 그런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냥 덮고 가기 때문이다. 갈등사회학은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곳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갈등의 원인이고, 문제인지를 밝혀낸다. 그러면서 논의를 이끌어내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서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갈등을 가지고 오신 예수
예컨대 교인들이 교회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는 때는 언제일까. 교회가 평안하고 별 문제 없을 때인가. 아니다. 교회가 분란 가운데 있거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다. 그러면 사람들은 진정한 교회는 무엇인지를 찾게 되고, 교회 안에서 당연시했던 관습들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어떤 교회들은 좀더 성숙된 교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잘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 교회는 갈라지고 교인들은 시험에 든다. 즉 갈등을 첨예화하고 나누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갈등을 잘 관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한국사회는 심한 갈등 가운데 있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과 그로부터 나오는 이념의 문제가 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대표적인 갈등구조이다. 최근에는 밀양의 송전탑 문제가 있다. 제주 강정에서의 해군기지 건설 문제, 쌍용자동차 앞에서 이루어졌던 170여일의 철탑농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 이런 문제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사태, NLL 논란,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 역사 교과서 논란. 이렇게 짧게 스쳐가는 현재의 현안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거론된 것 중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이 모든 주제에 이 사회는 마치 용광로 끓듯 달아오른다. 잘 마른 볏짚을 한 단씩 안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불만 붙여주면 언
제든 큰불을 일으켜줄 수 있다는 심정들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입에 올리는 순간 논의는 산불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다시 갈등사회학으로 보자. 그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사회는 그 모습이 다 드러나 있는 것 같다. 각 곳에서 갈등은 불거져 있고, 이를 통해 이 사회의 문제들은 다 보여진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구성원들은 사회를 잘 이해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이렇게 드러난 문제들에서 진실이 무엇이고,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는 그러한가.
십자가의 희생이 답이다
갈등이 드러난 우리 사회는 현재 진실도 없고, 본질도 없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시시비비가 가려진 것이 없다. 우군과 적군만 남아 있을 뿐이다. 네가 말한 이상 그것은 진실이 아니고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실제적 팩트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그 사실을 누가 말했느냐만 중요하다. 즉 아군과 적군의 나눔만 남은 것이다.
갈등이 있음은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이 논의를 만들고,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 현실을 볼 때 이것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말 것이다. 최소한의 진실마저 허용하지 않는 이 사회의 현실은 분명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예수님도 당시 사회에 갈등을 몰고 왔다. 기존 체제에 있던 이들은 그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그 논쟁의 끝을 십자가에서 희생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결론맺어갈 때 갈등의 과정은 세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 시대에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결국 이 십자가의 정신을 회복하고, 이 세대와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믿는다.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