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정성화 “내 공연 본 관객들에 배신감 안들게 하는 배우 되고 싶어”
입력 2013-10-10 17:09 수정 2013-10-10 22:12
만난 사람=이명희 논설위원
아직도 어떤 이는 그를 개그맨으로, 어떤 이는 TV 드라마나 영화 속의 ‘맛깔스런 조연’쯤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폭풍 가창력과 연기력에 전율을 느껴본 관객들은 그를 ‘뮤지컬계 대세’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공연을 보고 무슨 상이라도 주고 싶었다는 이 남자. 올해는 상복이 터졌다. 지난 6월 제7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레미제라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더니 7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딤프) 어워즈에서 올해의 스타상, 지난 7일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까지 뮤지컬계 상을 싹쓸이했다.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인 ‘레미제라블’을 27년 만에 한국어로 초연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에 방점을 찍은 정성화(38). 다음달 공연을 앞두고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맨 오브 라만차’ 연습에 한창인 그를 8일 만났다.
-2010년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웅’으로 남우주연상 2관왕과 올해의 스타상을 차지한 데 이어 두 번째로 뮤지컬계 상을 석권했다. 수상 소감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는데 잠재력이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상을 주시니까 감개무량하다. 레미제라블을 원 캐스팅(한 배역을 배우 한 명만으로 진행)으로 1년 하면서 몸이 좀 깎였다 생각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는데 결실을 맺은 느낌이어서 기분이 굉장히 좋다.”
-시상식에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하던데.
“사실 배우들이 힘들면 집에 가서 짜증을 낸다. 말도 안 하고. 와이프가 야속했을 거다. 그런데도 공연 끝날 때쯤 되면 나를 먹이려고 집에서 음식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런 와이프의 정성 덕분에 1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레미제라블이 1985년 영국 런던 초연 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대작이어서 영국이나 미국 배우들과 비교된다거나 한국어로 처음 공연하는 게 부담되지는 않았는지.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와 10주년 콘서트는 말 그대로 음악을 중점적으로 살린 쇼다. 그것의 웅장함을 보고 상대적으로 우리 것을 보면 초라하다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18인조 오케스트라와 공연하는데 거기는 60인조쯤 되는 오케스트라와 뒤에 합창단 200여명이 쫘∼악 깔려있는 데다 큰 아레나에서 하니까 웅장하고 엄청난 사운드에 반했을 거다. 그걸 기대하고 오는 분들이 실망하는 경우는 가끔 있었다.”
-지난해 영화로도 국내에서 개봉돼 큰 인기를 끌면서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영화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시너지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뮤지컬도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연기한) 휴 잭맨이랑 저를 비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뮤지컬 안에서의 제 모습은 휴 잭맨보다 더 자신 있었다.”
-레미제라블 공연에서 장발장의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표현하고 싶었는지.
“제일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아버지에 대한 거였다. 아버지가 주는 딸에 대한 내리사랑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한국 사람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잘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부분들의 디테일을 살리도록 연습했다.”
다음달 19일부터 공연하는 ‘맨 오브 라만차’는 그에게 각별하다. 2007년 산초 역을 제안받았지만 돈키호테 오디션에 도전해 역을 따냈고, 개그맨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작품이다.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저에게 특별한 것은 제 삶이랑 비슷하기 때문이다. 개그맨으로 시작했다가 사람들의 편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뮤지컬 생활을 계속하고 있고, ‘저 사람은 조금 웃기는 연기자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만약 계신다면 그런 분들에게 조금은 무장해제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돈키호테를 연기하게 되면 나하고 연결되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각별하다. 이번에도 연습을 하는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다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에게 정말 좋은 작품이다.”
-네 번째 도전인데 이번 공연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2010년에 하고 3년 만에 다시 하는데 그때보다 나이를 먹었고, 연기술도 달라졌을 테니 그런데서 나오는 걸 기대하는 거지, 더 만들거나 하는 것은 없다. 다만 그전에 찾지 못했던 돈키호테나 세르반테스의 부분들을 많이 발굴해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조승우씨와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하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전혀 없다. 물론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다 팔려나가니까 내꺼 안 팔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있긴 했지만 너무 많은 분들이 제 공연도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예매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조승우씨와 저랑 표현하는 방식이나 돈키호테를 받아들이는 철학이 다를 테니까 두 가지 다 보는 맛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가 뮤지컬에 뛰어든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하는 연극을 보러 왔던 제작자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가 ‘저 친구랑 뮤지컬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제안한 것이 2003년 말 처음 공연한 ‘아이 러브 유(I LOVE YOU)’다. 남경주씨 등 뮤지컬계 대선배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긴장하고 열심히 했는데 그때 뮤지컬의 ‘참맛’을 알게 되고 뮤지컬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뮤지컬을 하고 있단다.
뮤지컬로 풀리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그의 원래 꿈은 개그맨이었다. 아니 더 거슬러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가면 컴퓨터 기사였다. 부모님이 교육용으로 컴퓨터를 사주셨는데 게임을 열심히 했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수학적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고교 2학년 어느 날 학교 소풍을 갔다가 선생님 흉내를 냈는데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어 개그맨으로 꿈을 바꿨다.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은 예능장학금을 조성해 연기학원비까지 대주셨다.
-1994년 SBS 공채 3기로 개그맨을 시작했는데.
“서울예술전문대에 입학해 개그 서클에 들어갔는데 SBS 방송국이 개국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점이었다. 신동엽 선배가 공연을 보러 와서는 ‘기쁜 우리 토요일’ 프로그램이 생기는데 같이 해보자고 해서 개그맨을 시작했다. 특채로 들어갔다가 공채 시험을 봤다. 아주 순탄하게 개그맨이 되다 보니 소중함을 잘 몰랐다. 사람들이 알아봐주니 중독이 됐고, 열심히 할 생각은 안 하고 연예인이라는 의식에만 빠져들게 됐다. 잘될 리 있겠는가. 개그맨은 됐지만 개그맨 생활을 순탄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동안 실패하거나 힘들었던 시절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20년 정도 됐는데 돌이켜보면 눈물을 쥐어짤 만한 짧은 고통의 순간은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요즘이다. 그동안 얼마나 지지부진했는지, 오랫동안 참 정신 못 차리고 살았구나 싶어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TV 드라마와 영화를 10여편씩 했는데 인상에 남는 작품은.
“군에서 제대한 뒤 1998년 지금의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송은희 백재현 김한석 이휘재 정상훈 등과 함께 공연했는데 아직도 생각난다. 그해 물난리가 나서 밖에 차들이 잠기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 속을 뚫고 와서 볼 정도로 대박이 났다. 드라마 ‘카이스트’ 할 때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안에 웃기는 캐릭터는 나 혼자였는데 만드는 재미, 대전에 내려가서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 ‘페이소스’를 갖고 희극 연기를 했던 기억, 이런 것들이 참 많이 자양분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첫 영화인 ‘황산벌’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라는 작업이 배우들과 어울리면서 ‘인간 맛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전 영화 촬영차 마산에 내려갔다고 하던데 어떤 작품을 찍고 있나?
“내년에 개봉하는 영화 ‘해적’을 촬영 중이다. 1년 전 촬영을 끝낸 영화 ‘창수’는 다음달 개봉한다. 영화는 앞으로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작품을 고를 때 기준은?
“흥미로워야 한다. 정성화가 저걸 하면 그 행보가 흥미로울까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고 내가 하기에 재미있을 것, 그게 중요하다. 내가 부담을 느끼는 거면 결과물도 안 좋다. 아주 재미있겠다, 가슴이 뛴다, 이런 것들은 한다. 돈을 떠나서 그것이 제일이다. 이번에 영화 ‘해적’의 무기상 캐릭터도 단역이지만 이렇게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겠다고 고집 부렸다.”
-요즘 가창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아이돌들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 덕분에 뮤지컬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많다. 어떻게 보는지?
“일종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비판을 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제작자나 아이돌 본인들도 흥미롭겠다, 이런 생각들이 있을 테고. 그들을 보면서 움직이는 잠재적인 팬들이 있을 거다. 그런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택은 관객이 하는 것이다. 저도 아이돌과 두 번 공연을 해봤는데 그 친구들이 얼마나 부담을 느끼며 공연을 준비하는지 관객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앞으로 계획은.
“영화계 쪽으로 발을 넓히고 싶다. 영화계에선 신인에 불과하다. 자세를 낮추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한테도 눈도장을 찍혀서 언젠가 뮤지컬처럼 좋은 앞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고 싶다. 뮤지컬은 다음 작품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도전의식이라는 것도 있는데 항상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고르고 싶고 창작 뮤지컬도 하고 싶다. 지금까지 대극장 위주로 공연해왔는데 가끔 소극장에서도 관객을 만나면 좋지 않을까 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죽을 때까지 믿음직한 배우가 되고 싶다. 자기 돈 내고 저를 선택한 건데, 돈 내고 들어왔는데 저 사람한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정성화는
연습벌레로 유명한 조승우씨가 자기보다 한 시간 일찍 와 있던 그를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한 것이 뮤지컬 배우로 도움이 됐다는 그는 “타이거 우즈에게 스윙 코치가 있듯 뮤지컬 배우에게도 보컬 코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힘들었던 시절 선배가 운영하는 ‘바’에서 일할 때 만난 6살 아래 아르바이트생 여자친구와 8년 열애 끝에 2011년 결혼했다. SK행복나눔재단이 운영하는 ‘해피 뮤지컬스쿨’ 고문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최고 가치관으로 꼽는 것은 행복. △1975년생 △서울예전 연극과 졸업 △1994년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 △TV 드라마 ‘카이스트’ ‘동물원 사람들’ ‘현정아 사랑해’ ‘개인의 취향’ 등 출연 △영화 ‘황산벌’ ‘위험한 상견례’ ‘내 아내의 모든 것’ ‘댄싱퀸’ ‘멋진 인생’ 등 출연 △뮤지컬 ‘아이 러브 유’ ‘영웅’ ‘스팸어랏’ ‘맨 오브 라만차’ ‘라카지’ ‘레미제라블’ 등 출연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