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군주의 교본? 그는 ‘다수의 지지’에 주목했다
입력 2013-10-10 17:26 수정 2013-10-10 22:22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에게 듣는 출간 500주년 마키아벨리 ‘군주론’ 다시 읽기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대표작 ‘군주론’이 세상에 나온 지 500년을 맞아 국내 학계에서도 재조명이 활발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권력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요약, 수용돼 왔다. 실제 사상은 과연 그럴까. 500년 전,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에서 그가 ‘군주’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500년간 오해받고 오독됐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지금 어떻게 읽는 게 좋을지 들어봤다.
그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마키아벨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치철학자이자 공화주의 이론가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마키아벨리 연구자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모습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지난 8일 한국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기념위원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민주적 리더십: 군주의 가려진 진실’이란 주제로 발표한 데 이어 19일 한국정치학회 주도로 열리는 학술대회에도 발제자로 나선다. 이에 앞서 출간된 그의 저서 ‘지배와 비지배’(민음사·사진)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상세한 해설서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곽 소장은 먼저 500년간의 오해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군주는 단테의 ‘신곡’보다도 더 많이 번역된 이탈리아어의 고전이지만 마키아벨리 특유의 수사와 모순어법 때문에 당대에도 무수한 공격과 비판을 받았다. 곽 소장은 “갈등과 같은 정치의 불확정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인간의 의지를 부각시키려고 애썼던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신학과 윤리의 문제로 인간과 정치를 인식했던 것과 달랐고, 이 때문에 반기독교적이라고 공격당할 소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책이 마키아벨리가 1513년 탈고 당시 붙인 라틴어 제목 ‘군주정에 대하여(Sui Principati)’가 아니라 그의 사후인 1532년 교황청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목과 내용까지 수정돼 ‘군주(Il Principe)’로 나오게 된 연유다.
국내에서는 일본에서 번역된 제목을 따라 ‘군주론’으로 소개되면서 아예 ‘군주의 교본’이자 일종의 처세술처럼 읽히게 됐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군주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역설적으로 ‘다수’를 강조함으로써 고전적인 공화주의를 넘어선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참여해서 자기의 꿈을 실현하려는 ‘소수’가 아니라 타인의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기질을 가진 ‘다수’에 주목했다”며 “심지어 혁명적 군주조차도 반드시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갖고 있는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비지배의 열망’을 충족시켜야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다수에 주목한 마키아벨리는 갈등도 좋은 것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마키아벨리는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지도자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받아들였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에게 정치는 갈등과 그것이 조정되는 모습을 통해 시민이 배우는 교육의 장이었다”며 “갈등만 생기면 문제라고 보는, ‘한국의 정치 없는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 통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를 통해 한계에 봉착한 현대 정치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 읽기가 지금 필요한 이유다. 곽 소장은 ‘군주’와 더불어 마키아벨리의 저작 3권을 함께 읽기를 권유했다. 국내에 ‘로마사 논고’나 ‘정략론’으로 소개된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열 권에 대한 강의’와 ‘피렌체의 역사’, ‘전술(전쟁의 기술)’이다. 그는 특히 ‘강의’는 ‘군주’를 제대로 읽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일 뿐 아니라, 다수인 시민을 설득해야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