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곽희문 (10) 광주의 한 작은교회 목사님 “선교비는 우리가…”

입력 2013-10-10 17:04


아내가 한국에서 학원강사로 번 돈을 보내 사역하던 일이 1년 만에 종료될 수 있었던 것은 광주의 한 귀한 목사님 덕분이다. 우리 부부의 사연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아내 강동희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보자고 하셨단다. 아내는 광주로 목사님을 뵈러 갔는데 예상 외로 작은 건물의 2층 임대교회였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가 필요한데 부부가 이렇게 떨어져 지내나요.”

“꽤 들죠. 엘토토에 앨고마에 엘지아까지 거두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내가 기도하고 성도들과 의논하고 연락 드릴게요.”

멀리서 왔는데 식사도 한 끼 나누지 않고 돌려 보내는 그 목사님에게 섭섭했다고도 한다. 200석 정도 되는 그 교회는 사택도 교회 한쪽을 막아 사용하는,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교회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회 목사님에게서 전혀 예상치 않은 연락이 왔다.

“강 선교사님. 우리 교회에서 말씀하신 선교비를 책임질 테니 케냐로 들어가세요. 부부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고 아내와 한 번 만난 것뿐인 광주 M교회 목사님. 도대체 우리의 무엇을 보고 매달 거금을 주시겠다고 한 것일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 M목사님이 믿는 하나님과 같고, 또 같은 아버지시니 서로 좀 돌려쓰라고 명령해 주신 것이 분명했다. 이 목사님은 건축헌금으로 모아놓았던 거금도 엘토토학교 건립에 아낌없이 주셨다.

아내의 귀환을 가장 좋아한 것은 역시 딸 상민이다. 딸은 혼자 지내며 성큼 성숙해져 있었다. 엘토토교회 유치부 반사로 활동하며 이것저것 사역을 도왔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내의 뜻대로 ‘상위 1% 리더’로 성장하는 것에 만족했을 아이였다. 그러나 상민이는 부모의 뜻을 따라 케냐에 왔고 선교사명을 다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이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내가 이곳에 다시 오면 내가 그동안 펼쳐놓은 사역들을 함께 해 나갈 것으로 나 역시 흐뭇했다. 내가 조금은 편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아내는 스스로 사역을 찾아 일을 만들어 냈다. 정말 못 말리는 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보 예전부터 봐 왔던 케냐 마사이족 카지아도 마을로 선교 갔으면 해요. 그곳은 정말 교회도 없고 학교도 없잖아요.”

나도 몇 차례 다녀온 그곳은 문명과 담쌓은, 오지마을이다. 원시적인 삶을 사는 그곳을 아내가 선교한다니 사실 걱정이 앞섰다.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외부에 전할 수단이 없는 곳이었다. 다행히 대학교수로 은퇴한 마사이족 출신 노인 한 분이 아내와 동역자로 따라나서 주었다.

아내는 나이로비에서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카지아도에 도착하니 바로 근처에서 표범 우는 소리가 들려 몸이 오싹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아내는 대여섯 명을 모아 놓고 성경공부를 가르치며 복음을 증거했다. 한번 가면 길게는 3주 정도 머무르며 복음을 전했다. 아내는 이곳 마사이부족을 위한 복음학교를 짓는 데 신경을 쓰느라 한동안 나이로비를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세워진 학교가 바로 ‘올로이 랄레이 복음학교’다. 우리는 이 학교를 다 건립한 뒤 지역마을에 기증하고 운영만 맡기로 했다.

이곳은 무슬림이 많은 지역이라 위험도 있고 복음전파에 대한 방해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어려움은 있어도 결국 승리는 우리 것이다. 우리 부부는 케냐인들에게 무엇을 준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저 그들과 함께 지내며 사랑을 배달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하신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