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많아 사실확인 필요하다지만… ‘권위 과시용 줄소환’ ‘호통국감’ 개선 지적
입력 2013-10-10 05:18
정치인들이 대기업 회장이나 경제단체장 등 기업인들을 국정감사장에 부르는 표면적인 이유는 ‘현안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다. 특히 올해는 일감 몰아주기, 4대강 사업, 비정규직 불법 파견, 산업재해 등 굵직한 경제·산업 현안이 많아 기업인 증인 규모가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정치권에선 “의혹이 있으면 나와서 해명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재계에선 “기업 면박주기”라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9일 각 상임위별로 채택된 증인을 보면 기업인이 193명으로 전체 일반 증인(258명)의 74.8%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은 “올해 산자위 주요 이슈가 소상공인 보호, 골목상권 침해이다 보니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많이 채택됐다”며 “당초 100명이 넘었는데 그나마 48명으로 줄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기업인 출석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이익과 직결된 경제문제에 대해 기업 관계자가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유일한 장이 국정감사라는 설명이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대표가 국민 앞에서 사실관계를 밝히고 동양그룹 회장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건 기업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밝혔다. 재계 입장에서도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 등에 대해 국회에 입장을 전달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20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많은 증인을 불러 신문하다 보니 진상을 밝히거나 의혹을 해소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국감에서 국회 정무위는 32명의 증인을 채택했지만 재벌그룹 회장 등 6명이 불출석했고 출석한 26명의 증인 가운데 질의를 받은 사람은 1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2명은 국감장만 지키다 돌아갔다. 출석한 기업인들이 곤란한 질문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도 많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감을 권위를 과시하는 장으로 악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감장에서 의원들이 증인에게 답변할 기회조차 안 주거나 호통치듯 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업들도 이 부분을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회장이 국감장에 불려나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죄지은 사람처럼 호통만 듣다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오면 기업 입장에선 이미지 실추 등 피해가 막대하다”며 “매년 국감 때마다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을까 기업 전체가 초비상”이라고 우려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최근 트위터에 기업인 증인 무더기 채택과 관련, “국회의 의례적인 권위를 뽐낼 시대는 지났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국정감사 증인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가 기관의 기관장 또는 부서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기업인 증인 채택은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