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중인데 외간 남자가 ‘불쑥’… 젖 먹이기 불안한 수유실

입력 2013-10-09 18:12


직장인 이모(31·여)씨는 지난달 말 생후 5개월에 접어든 첫아이를 데리고 서울의 한 백화점 수유실에 들렀다가 불쾌한 일을 겪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문을 활짝 열고 한 부부가 들어왔다.

가슴을 드러내고 수유하던 이씨는 낯선 남자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지만 부부는 개의치 않고 자기 아이에게 수유하기 시작했다. 부인이 젖을 물리는 동안 수유실을 두리번거리는 남편이 부담스러웠던 이씨는 서둘러 수유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수유하는 모습은 시어머니께도 보여드리기 부끄러운데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가슴을 보이게 돼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10일은 출산을 장려하고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취지로 정부가 정한 ‘임산부의 날’이다. 그러나 배려가 필요한 수유실 등에서 무례한 행동 탓에 소동이 벌어지고 시설 자체가 여전히 부실한 곳도 많다.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안과·이비인후과 병동 수유실은 사무용 가림막 하나만 덜렁 놓여 있다. 원무과 구석의 공개된 공간을 가림막으로 막아 수유실을 만든 터라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소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누군가 ‘불쑥’ 쳐다보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수유 장면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달 병문안을 왔다가 수유실을 이용했다는 신모(29·여)씨는 “직원들이 오가는 기척이나 남자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 사용하기에 매우 불편했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1∼4호선 역사에 설치된 수유실은 평소엔 아예 잠겨 있다. 쓸데없이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수유실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벨을 눌러 역무원을 부르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수유실이 산모와 아이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배려심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모유수유를 시도하는 가족도 크게 늘고 있다. 서울메트로 1∼4호선 수유실 25곳의 이용자는 2009년 3071명에서 지난해 2만1001명으로 늘었다. 대한모유수유의사회 정유미 명예회장은 “모유수유 문화가 정착되려면 시설을 늘리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동시에 이용자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