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 새 의장에 옐런 지명] 美 첫 여성 경제대통령 ‘날카로운 비둘기’ 난다
입력 2013-10-10 05:03
최초의 ‘여성 경제대통령’이 될 재닛 옐런(67)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은 무엇보다 최정상급 경제학자로 꼽힌다. 이번 인사에 여성이라는 희소성이 고려됐다거나 성비를 맞추기 위한 의도가 조금이라도 포함됐다고 여기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 경제학계를 통틀어 금융 이론과 실질에서 옐런만큼 실력과 경력을 갖춘 이도 드물다는 평가다.
◇경기 예측 가장 정확=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그를 평가하면서 “비둘기의 예측력이 매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보다 고용을 더욱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연준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경제예측력에서는 매보다 날카로운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2007∼2012년 연준 회의록을 바탕으로 연준 정책결정자들의 경기예측력을 평가한 결과 옐런이 가장 정확했다.
실제로 2007년 12월 연준 회의록을 보면 대다수 이사는 경기후퇴(리세션)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옐런은 “신용경색 심화와 경기후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비관론을 내놨다. 다음해 세계경제는 옐런의 예상과 같이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았다.
1946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옐런은 어려서부터 자타가 공인한 수재였다. 포트해밀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영문학 최우수상, 수학 최우수상, 과학 최우수상 등 상이란 상은 싹쓸이했고, 학년 대표로 일하면서 리더십도 갖췄다.
71년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조교수를 지낸 옐런은 연준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던 77년 당시 연준에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 조지 애커로프를 만나 1년 만에 결혼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교수인 남편 애커로프는 ‘정보비대칭이론’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아들 로버트 애커로프도 영국 워릭대에서 경제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플레이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실업문제 해결과 고용을 중시하고 통화정책·무역뿐 아니라 싱글맘·10대 갱단까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옐런의 성향은 남편 애커로프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애커로프는 “우리 부부는 성격적으로 완벽히 들어맞을 뿐 아니라 거시경제에 대해 거의 완벽히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연준 부의장이 되기 이전에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로 근무했으며 94년 Fed 이사와 97년 빌 클린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당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지명할 생각이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2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의 옐런 지지성명 등으로 서머스 전 장관이 후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옐런의 지명이 확실시됐었다. 옐런 부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주식, 채권펀드, 은행예금 등 480만∼1320만 달러(53억5000만∼147억3000만원 상당)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라고 WSJ는 전했다.
◇세계경제 여성 파워=연준 의장에 옐런이 임명되면 세계경제를 좌우할 수장 자리에 여인천하 시대가 열린다. 앞으로 5년 안에 세계경제 위기가 재발한다면 이를 해결할 주요 수장 5개 자리 중 4개를 여성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지난달 WSJ 보도가 한층 더 현실에 가까워진 것. WSJ가 꼽은 전 세계 경제권력 5개 자리는 미국 대통령, 연준 의장,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독일 총리다.
이 중 2개는 이미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IMF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현재 총재직을 수행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총선에서 3선 연임에 성공했다. 이제 옐런이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 Fed 의장으로 임명되면 경제권력 5개 자리 중 3개를 여성이 채우게 된다. 나머지 2개 자리 가운데 한 자리도 조만간 여성 몫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2016년 12월에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군 가운데 지지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