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괜찮고 삼성은 안돼”… 美 보호무역 점점 노골화

입력 2013-10-09 17:59 수정 2013-10-09 21:16


삼성제품 수입 금지로 본 실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승인은 형평성과 일관성을 잃었다. 미국은 자국 기업 활성화를 명목으로 최근 보호무역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안팎에서 보호무역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은 특허 침해해도 괜찮다?=오바마 정부의 이번 결정은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펴겠다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최근 26년 동안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애플 사례가 유일하다.

모든 제품을 해외에서 만드는 애플은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 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애플은 지난 6월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전문가용 컴퓨터 ‘맥 프로’ 신형 모델을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애플은 최근 ‘디자인드 바이 애플 인 캘리포니아(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를 문구로 한 광고를 선보이며 미국 기업임을 유난히 강조했다. 맥 컴퓨터 운영체제의 새 이름도 그동안 동물의 이름으로 하던 관례를 포기하고 캘리포니아 지명인 ‘매버릭스’로 결정하기도 했다.

ITC 결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는 정치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을 배려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반면 자국 기업인 애플의 피해 여부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9일 “표준특허든 상용특허든 침해 여부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이미 ITC에서 끝낸 것”이라면서 “특허 성격을 운운하면서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미국 이익에 맞춰 칼자루를 휘두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두 얼굴’=미국은 겉으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허를 포함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지적재산권 보호를 역설했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도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 원칙을 내세웠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국과 통상협상을 할 때는 이들 국가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느슨하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정작 자국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내부에서도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의 에드워드 블랙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애플 제품에 대한 ITC의 수입금지 결정을 거부하면서 내놓은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미국 기업들은 정부의 자국기업 보호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최근 미국 정부와 기업의 보호무역 움직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철강업체 AK스틸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독일, 일본, 스웨덴, 대만 등 6개국의 무방향성 전기강판(NOES)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 상무부와 ITC에 제출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지난 1월 미국산 제품 판매를 촉진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캠페인을 선언하기도 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