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경원] 업계에 ‘정보보고’나 하는 금감원
입력 2013-10-09 17:59 수정 2013-10-10 00:53
청주지법은 최근 알리안츠생명의 불완전판매를 인정, 가입자에게 납입 보험료 전액과 연 6%의 이자까지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는 보험상품을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속여 팔았다”며 가입자의 기명날인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판매를 인정했다.
기자는 동양그룹 투자자들의 피해 민원이 빗발치는 요즘 의미 있는 판결이라 생각하고 지난 8일 금융감독원에 물었다. 판결에서 언급된 알리안츠생명 상품에 대해 투자자 주의를 환기할 방침인지, 증권뿐 아니라 보험 분야에서도 불완전판매 방지 대책이 마련되는지 등이 궁금했다. 독자들에게 알려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들은 “동양 사태와 보험은 무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해에 수십만건이 쏟아져 나오는 판결에 일일이 금융 당국의 방침이 뒤따르지는 않는다” “계약 체결 방식이 각각 다를 텐데 해당 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일반화해 말할 수 없다” “동양 사태는 증권 쪽의 이야기일 뿐 보험 영업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지침이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뭐든지 동양 사태와 연관해 생각하시면 안 될 것”이라는 근엄한 훈계까지 덧붙였다.
신경쓸 일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던 금감원은 뒤로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취재 내용을 귀띔해줬다. 기자는 금감원에 질문한 지 2시간 만에 알리안츠생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우리 보험사에 대한 판결이 취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며 “기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보험사를 감독하는 금융 당국이 업계에 기자명, 매체명까지 알려주면서 비판적인 기사에 대한 정보보고를 해준 셈이다.
금감원이 금융권과 유착돼 있다는 의혹은 오래된 일이다. 금감원 출신들의 금융회사 낙하산 이야기는 식상해서 이젠 웬만해선 언론에도 잘 안 나온다. 하지만 불완전판매와 소비자 보상 문제에는 심드렁하면서 금융회사에 취재 정보를 알려주는 일에만 기민할 때, 금감원을 둘러싼 이런 의혹들은 사실처럼 들릴 것이다.
이경원 경제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