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66% “생활비 걱정”… 사라진 아메리칸드림

입력 2013-10-09 18:00


수백년간 미국을 지탱해 온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자녀 세대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10명 중 4명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겨우 먹고살 만큼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미국인이 60%를 넘겼다. 해고에 대한 두려움은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렸던 1970년대보다 커졌다. 자택 소유자 4명 중 1명이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달 6∼12일 버지니아대 전문조사기관 밀러센터와 공동으로 미국 성인 1509명을 설문한 결과다.

설문에서 약 66%는 가족의 기초생활비를 걱정한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절반이 안 됐던 40년 전과 비교해 20%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응답자 3명 중 1명은 자신이 거의 항상 돈 걱정을 한다고 했다. 늘 생활비 걱정을 한다는 사람은 과거의 배로 늘었다.

일터에서는 대부분이 제자리 뛰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향후 5년 내 승진하거나 돈을 더 주는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회의적이었다. 58%는 자신의 수고보다 적은 돈을 번다고 답했다. 최근 1년간 기술 훈련을 받은 사람 중 72%는 이런 노력에도 월급엔 별 차이가 없었다고 했다.

근로자인 응답자 10명 중 6명 이상이 경제 사정 때문에 직업을 잃을까봐 걱정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75년 같은 응답자를 넘어선 비율이다. 몇 년 안에 자신의 경제 수준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미국인은 절반이 안 됐다. 현 수준에 머무르거나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자녀가 자신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누릴 것으로 믿는 미국인은 39%에 불과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퇴색하고 있다. 전체 자택 소유자의 25% 이상이 자신의 부동산 가치보다 많은 주택담보대출을 안고 있다. 자택 소유가 아메리칸드림의 초석이라고 답한 사람은 약 50%로 25년 전의 80%보다 크게 하락했다.

지난 몇 년간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고 답한 미국인은 75%가 넘었다. 절반 이상은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서 대학 진학만으론 일자리를 구하기에 부족하다고 답했다. 버지니아주 스포트실배니어의 정보전문가 필 배리(44)는 2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구직에 필요한 기술 대부분은 군 복무 기간에 익혔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그래픽 디자인 사업을 하던 짐 버터윅(61)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문을 닫고 하루 75달러를 받는 계약직 미술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사회보장제도 등 사람들이 안전망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66세에 퇴직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메릴랜드주 해거스타운의 트레이시 너블(53·여)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집에 있는 수집품을 인터넷으로 내다팔았다. 남편이 은퇴한 뒤 고정수입에서 의료비 비중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었다. 너블은 식료품비를 아끼기 위해 뒷마당에 야채를 기르기 시작했다. 달걀과 고기를 얻기 위해 닭장도 지을 계획이다.

설문 응답자들은 지금 미국인이 어려움을 겪는 데는 정치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10명 중 7명이 정치적 교착상태를 최대 원인으로 꼽았다. 50% 이상이 여야는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중산층을 위해 효과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몽고메리 카운티의 켄 리처드(70)는 “워싱턴에서는 아무런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며 “그들은 내 미래를 갖고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푸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