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수난시대… “경영권 승계 어찌합니까”
입력 2013-10-09 17:30
잇따른 사법처리와 고령화 및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해 상당수 대기업에서 오너들의 정상적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경영권 승계 문제가 재계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등으로 직계 자녀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에도 제동이 걸려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때문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거나 자녀 중심의 승계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곳곳에서 ‘회장님 리스크’=요즘 재계는 성한 재벌이 드물 정도로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있다. 특히 이 리스크들은 오너와 관련된 경우가 많고 이는 곧 경영권 안정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최근 웅진·STX·동양그룹 등이 부실로 잇따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다수의 재벌 총수가 횡령·탈세·배임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 와중에 있다. 현재 SK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CJ 이재현 회장, 태광 이호진 전 회장 등이 구속 또는 구속집행정지 상태다.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도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대한전선 오너인 설윤석 사장은 최근 58년간 3대에 걸쳐 지켜온 경영권을 내놓게 됐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의 건강이나 고령화 문제도 고민거리다. 또 경영권 승계 대상 자녀가 아직 경영 수업을 충분히 받지 않아 경영권을 물려주기 어려운 기업도 다수다.
◇일부 제외하곤 경영권 승계 작업 미미=재계에선 삼성과 한진그룹 정도가 경영권 승계 작업에 들어갔을 뿐 나머지 기업들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 경영권을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넘기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한진그룹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핵심인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장남 조원태 부사장이 떠맡는 수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후계자로 꼽히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차 주식 1.74%와 현대차 주식 0.0001%를 갖고 있는데 불과해 승계 작업이 한참 멀었다는 평가다. LG그룹도 구본무 회장 양아들인 구광모 LG전자 부장이 직급이 낮고 그룹 지주사인 ㈜LG의 지분율(4.78%)도 적다. SK 최 회장 자녀도 나이가 어리다. 한화는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이 그룹을 승계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경영수업 중에 있다.
◇현 오너 중심체제 변화 목소리도=재벌 오너 개인 신병에 따라 경영권이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지금처럼 오너가 전권을 갖는 경영체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지분은 승계하더라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쪽으로 승계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이지만 2002년 이후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해오는 등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모범적 기업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또 한 자녀에게 경영권을 독점적으로 승계하기보다 가족과 전문경영인이 어우러진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직계가족 승계가 불가피하다면 경영수업을 보다 철저히 하고 특히 탈·불법적 활동에 연루되지 않도록 ‘도덕 경영’ 철학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