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결 금빛 파도 ‘가을의 유혹’… 억새능선이 아름다운 가을산 3選

입력 2013-10-09 17:03 수정 2013-10-09 23:19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에서 남도 끝자락인 전남 장흥의 천관산까지 은백색의 억새가 능선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었다. 쪽빛 가을하늘 아래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새하얀 억새는 단풍마냥 화려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잡은 지휘봉에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추는 모습이 황홀하다 못해 몽환적이다. 억새가 아름다운 산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본다.

◇민둥산(강원도 정선)=민둥산(1118m)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억새밭 중 하나로 꼽힌다. 예전에 화전민이 살던 민둥산은 정상이 석회암지역이라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대신 해마다 이맘때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66만㎡ 넓이의 정상이 억새의 바다로 변신한다.

민둥산 산행은 증산마을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해발 800m 고지에 위치한 발구덕마을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3.3㎞. 화전민 마을이었던 발구덕마을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지반이 여기저기 움푹 파인 분지 형태이다. 공동이 생겼다가 푹 꺼진 분지는 모두 8개로 ‘팔구덩’이라 불리다 언젠가부터 ‘발구덕’으로 바뀌었다.

민둥산은 이름처럼 산세가 평범하고 밋밋하다. 그러나 막상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가파른 경사도 많아 숨을 헐떡이게 된다. 7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밭에 오르면 증산역과 지억산, 함백산 등 고산준령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발구덕마을과 민둥산 정상에서는 11월 3일까지 등반대회, 산악 승마체험, 산상 엽서 보내기, 달집 소원 성취문 달기, 음악회 등 다채로운 행사로 이뤄진 ‘민둥산 억새꽃 축제’가 열린다.

◇무장봉(경북 경주)=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경주에도 정선의 민둥산 못지않은 억새군락이 있다. 무장봉 정상을 하얗게 채색한 억새군락은 148만㎡로 민둥산의 2배가 넘는 규모. 정상에 오르면 광활한 억새군락지 너머로 멀리 포항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행 들머리인 암곡동 주차장에서 무장봉 정상까지는 5.7㎞ 거리. 산행로는 무장봉 정상 아래까지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덕동천을 거슬러 올라 무상사지를 스쳐 지난다. 무장사는 태종 무열왕(김춘추)이 삼국을 통일한 후 평화시대를 열겠다며 병기와 투구를 묻은 곳이다.

억새로 뒤덮인 무장봉은 무장사지에서 3.1㎞를 더 올라야 만난다. 무장봉은 정상에서의 경관도 빼어나다. 발아래로 보문단지와 포항의 영일만이 보이고, 저 멀리 토함산 등 경주와 포항의 고만고만한 산들이 산수화를 그린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드라마 ‘선덕여왕’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억새 감상은 12월 초순까지 가능하지만 11월 중순에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덕동호에서 감포로 가는 국도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추령터널을 통과하기 전 우측으로 난 구불구불한 옛길을 오르면 멀리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관산(전남 장흥)=천관산은 호남정맥이 들판을 가로질러 다도해로 질주하다 우뚝 멈춘 바위산으로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천관산의 높이는 723m에 불과하지만 바닷가에 우뚝 솟아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웅장한데다 능선과 정상 부근에 깎아지른 듯 우뚝우뚝 솟은 기암괴석들이 인상적이다.

천관산 산행의 묘미는 어느 능선을 타더라도 아스라한 다도해의 풍광과 함께 한다는 것. 포봉과 불영봉을 거쳐 정상인 연대봉에 서면 정원석 양근암 닭봉 환희대 구정봉 등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들이 능선을 따라 삐죽삐죽 솟아있는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억새밭은 연대봉에서 환희대를 거쳐 구정봉까지 이어지는 약 4㎞의 능선을 따라 물결친다. 맑은 날 한라산이 보인다는 연대봉에서 마주하는 억새밭과 다도해의 어울림은 한 폭의 풍경화. 다도해에서 상륙한 해풍이 억새밭을 어루만지면 억새는 서로 얼굴을 부비며 파도타기를 한다.

역광에 물든 억새의 장관을 감상하려면 천관산문학공원∼포봉∼불영봉∼연대봉∼억새군락지∼환희대∼구룡봉∼탑산암∼천관산문학공원 코스를 탄다. 약 4.8㎞로 3시간 소요. 환희대에서 해넘이의 장관까지 감상하면 야간산행이 불가피하므로 반드시 손전등을 챙겨야 한다.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