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소가 웃을 일

입력 2013-10-09 17:24

우리나라 주요 선거에서의 조직적인 투표부정은 오래 전에 자취를 감췄다. 1948년 첫 총선 이후 60년대까지만 해도 집권세력은 공공연하게 전국 투표장에서 부정을 저질렀다. 70∼80년대까지 이따금 부정투표 논란이 있었지만 90년대를 넘기면서는 거의 사라졌다. 선심성 공약이나 돈봉투 돌리기 따위는 아직 일부 남아 있지만 투표 과정에서의 조직적인 부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60년 3·15 부정선거 때는 별의별 종류의 부정투표가 동원됐다. 가장 대담하고 끔찍한 부정이 사전투표였다. 투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경찰과 자유당 당원들이 미리 남의 투표용지에다 ‘이승만-이기붕’을 찍어버렸다. 4·19혁명 직후 민주당이 경찰로부터 입수한 ‘부정선거 지령서’에 따르면 사전투표 비율이 40%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릴레이투표도 횡행했다. 특정 당원이 미리 투표용지를 하나 확보해 자기 당 후보에게 기표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갖고 들어가 투표함에 넣고 공란의 투표용지를 받아 나오게 하는 수법이다. 그 다음 사람은 같은 기표를 해 갖고 들어가 동일한 과정을 밟게 하는 것이다. 유령투표는 죽은 사람이나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의 이름을 등재해 투표토록 하는 수법.

집권당 절대우세 지역에선 공개투표가 성행했다. 야당 참관인을 쫓아낸 다음 여당 후보를 공개적으로 찍도록 하는 것이다. 대리투표도 적지 않았다. 정치적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나 노인들에게 기권을 유도하거나 강요한 뒤 집권당 당원들이 대신 투표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부정투표가 만연하다 보니 지역에 따라서는 유권자보다 투표자 수가 더 많은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가 주초, 19대 총선 전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한 통합진보당 당원 4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로 “정당의 당내 경선은 자율성이 보장돼 있어 공직선거에서 헌법이 규정한 보통·직접·평등·비밀투표 등 선거의 4대 원칙을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당내 경선이어서 ‘직접선거’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가 직접 의사표시를 해야 함은 지극히 상식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상급심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게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co.kr